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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가 대청도에 주둔한 1951년부터 지금까지 대청도 해병들을 자식처럼 돌봤던 ‘해병 할머니’의 별세에 해병대가 슬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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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별세한 이선비(향년 87세) 할머니의 별명은 ‘해병 할머니’다. 대청도와 백령도에 근무한 적이 있는 해병이라면 모두 알 정도라고 한다.
1926년생인 이선비 할머니는 5살 때 황해도 해주에서 월남한 후 14살 때 대청도로 시집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해병들과 함께 살았다.
해병대가 대청도에 주둔한 건 이 할머니보다 늦은 1951년. 낮에는 엿장수와 고물장수를 하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하며 생활하던 할머니는 한 해병의 군복을 바느질해 준 것이 인연이 되어 해병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보이는 해병들마다 손수 밥을 지어 먹이고, 찢어진 군복을 수선해 줬다. 부대원에게 속옷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 할머니가 대청도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나갈 당시에는 장병들의 편지를 대신 부쳐주거나 고민을 들어주기도 했다. 부대 지휘관들조차 부대에 적응하지 못한 해병들을 이 할머니에게 보내 상담을 받도록 했다. 이렇게 해병대 장병들은 이 할머니를 자연스럽게 ‘해병 할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할머니는 팔순이 넘어 기력이 없을 때도 훈련이나 외출로 집 앞을 지나가는 해병들이 눈에 보이면 과자 하나라도 꼭 쥐어주며 격려하고 다독였다고 한다.
1981년 할머니가 남편과 사별했을 때 육지에 사는 아들이 함께 살자고 권유했지만 할머니는 “해병대와 떨어져서는 하루도 못살 것 같다”며 아들의 권유를 뿌리치기도 했다. 할머니의 아들 김형진 씨도 해병 546기로 복무했다.
해병대 장병들은 할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도배나 페인트칠 등으로 할머니를 도왔고 ‘해병 할머니 집’이이라는 간판을 직접 만들어 달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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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도 해병 부대장부터 사병까지 전출이나 전역으로 대청도를 떠나게 되면 부대에서 신고를 마친 뒤에는 꼭 ‘해병 할머니’ 집을 찾아 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이런 ‘해병 할머니’가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해지자 장병들은 순번을 정해 하루에 한 번씩 할머니를 찾아뵙고 안부를 확인하고 집안 청소와 땔감마련 등을 해드렸다.
‘해병 할머니’는 장병들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노환이 깊어져 2010년부터는 인천의 한 요양원에서 지내게 됐고 지난 11월 22일 별세했다.
‘해병 할머니’ 별세 소식을 들은 해병대원들이 줄이어 빈소를 찾았다.
“내가 죽거든 손자 같은 해병들의 손에 의해 묻히고 싶다”는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유해는 해병대원들의 배웅 속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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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6여단에서 정보참모와 작전참모, 여단장으로 복무했던 이호연 해병대사령관은 할머니의 별세 소식에 가슴 아파했다.
“해병 할머니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은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 의해서 성장하고 전파되어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며, 베품과 섬김의 성숙된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해병대는 할머니가 해병대로부터 받은 기념품과 표창장, 장병들과 찍은 사진 등 유품을 여단 역사관에 전시해 할머니와 해병대 장병 간의 따뜻한 인연을 전하고 어른공경에 대한 장병 정신교육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