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 의원
    ▲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 의원

    미국은 베트남전쟁 종전 20년이 지나서 빌 클린턴 대통령이 베트남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발표했다.  그 때가 1995년 7월 11일이었다. 그 해 8월에 베트남 수도 호치민 시에 미 총영사관을 설치했다. 모두가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재향군인회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고 특히 베트남전쟁 참전용사 모임은 연일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수 만 명의 동료 용사들이 참혹하게 전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적국과 국교를 수립하느냐며, 이들의 영혼을 어찌 달랠 것이냐고 고함을 질렀다.

    그 때 깅그리치 하원의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의회를 대표해서 새로 연 미 영사관을 방문해 축하해주고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미군 시신 발굴 작업에도 참석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같이 갈 다른 의원들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나는 하는 수 없이 보좌관만 데리고 혼자 떠났다.

    호치민 시내의 옛 미 대사관을 가봤다. 마지막으로 철수하는 미군 헬리콥터에 베트남인 직원들이 매달려 가다가 떨어지고, 베트남인들이 필사적으로 대사관 담장을 넘는 처절한 광경이 연출된 바로 그 곳이다. 당시의 처절한 현장은 전세계 TV뉴스에 며칠 동안 생중계됐었다. 이제는 여기저기 허물어진 곳들을 수리해서 박물관으로 꾸밀 계획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튿날 찾아간 유골 발굴 현장에서는 50명 남짓한 베트남 부녀자들이 손으로 조심스레 흙을 파헤치면서 열심히 유해를 찾고 있었다. 이들과 함께 미 해병대 병사 6명 정도가 숟가락 조각 등 무엇이라도 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다. 미군 전투기가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동네 사람들의 증언에 의존해서 근방을 조심스레 샅샅이 뒤지면서 전사자들의 인식표 등 뭐라도 찾기 위해 한 달 여 동안 안간힘을 썼지만 쇳조각 하나 발견한 게 없다고 한다. 일주일 정도 더 찾아본 뒤 다른 장소로 옮길 예정이라는 미 해병대원의 실망이 가득한 얘기를 들었다.

    베트남 부녀자들의 인건비와 그 밖에 모든 비용은 미국이 부담했다. 돈을 벌기 때문인지 발굴 현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부녀자들은 매우 밝은 표정으로 서로 웃어가며 수다를 떠는 모습이었다. 이들이 이곳에서 하루에 버는 돈이 남편들의 한달 벌이보다 더 낫기 때문이었다.

    현장에 있던 미 해병대원에 따르면 미군 전투기가 추락한 것을 목격했다는 장소 10군데 중에 유골과 유품이 실제로 발견되는 경우는 거의 1곳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 당시 미국은 발굴된 유해가 미군임이 확인되면 베트남 정부에 유해 1구당 1백만 달러를 지급했다. 미국은 수 천개의 유해가 발굴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 발굴된 유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미국은 북한 지역에서도 한국전쟁 당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군과 연합군의 유해를 찾아 구석구석을 헤맸다. 미 정부는 1993년 북한과 유해 발굴 공동작업에 합의하고 1996년부터 2005년까지 23차례에 걸쳐 유해를 발굴했다. 그 결과 226구의 시신을 발굴했고 그 중 72구의 신원을 연합군으로 확인했다. 유해 발굴 비용으로 북한 측에 제공한 비용은 2천 8백만 달러에 달했다.

  • ▲ (성남=연합뉴스)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가 6.25전쟁 발발 62년만에 25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이명박 대통령과 군 관계자,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헌봉송단에 의해 운구되고 있다.  전사자 유해 12구는 6ㆍ25전쟁 당시 국군으로 입대해 미군에 배속됐던 카투사로, 미국이 북한과 합동으로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전날 공군 C-130 수송기 편으로 하와이를 출발했다.ⓒ
    ▲ (성남=연합뉴스)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가 6.25전쟁 발발 62년만에 25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이명박 대통령과 군 관계자,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헌봉송단에 의해 운구되고 있다. 전사자 유해 12구는 6ㆍ25전쟁 당시 국군으로 입대해 미군에 배속됐던 카투사로, 미국이 북한과 합동으로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전날 공군 C-130 수송기 편으로 하와이를 출발했다.ⓒ

    이렇게 발굴된 유해 가운데 12구가 DNA 분석을 통해 대한민국 국군으로 판정돼 지난 5월 25일 62년 만에 고국의 품에 안겼다. 이들의 유해는 북한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미국 정부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들 중 2 명의 유해가 바로 김용수 일병과 김갑수 일병이다. 김용수 일병은 17살 학생이었고, 그의 삼촌인 김갑수 일병은 34살 나이, 두 아이를 둔 아버지로 가족을 뒤로 하고 전쟁터로 나가야 했던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둘은 같은 날 입대해서 사흘 간격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비용이 얼마가 들든 조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이들의 유해를 기어이 찾아내겠다는 미국 정부의 노력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지 국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이다. 이는 또한 군인들과 그 가족들의 사기를 높일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자기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충성심을 돋우는 원동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You are not forgotten until they are home”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