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진화포커스 제96호>
    언론 선진화, 저널리스트로서 소양부터 갖추자

    이 병 혜  / 명지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 
     
      우리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제3세계나 중진국들까지 부러워하는 성공한 국가모델로 성장하였다. 선진국들조차도 불과 50여 년 만에 경제수혜국에서 경제시혜국으로 성장한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지구 역사상 이렇게 짧은 시기에 성장을 보인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할 정도로 놀라워하고 있다.

      1960년대 우리보다 잘살던 나라들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못한 처지에 있는 것을 두고 그들 나라의 정치가 방향과 안정을 제때 제시하지 못하여 무너졌다고들 평한다. 물론 경제적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느냐 못하느냐는 그 나라의 정치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학문은 통섭을 이야기 하고 산업은 융합을 강조하고 있듯이, 이제는 그 무엇 하나 때문이라고 답하기도 매우 어려워졌다. 오늘날 우리가 처하고 있는 국가적 정체와 답보상황의 주요 원인은 정치적 리더십의 문제, 이념, 환경, 제도, 문화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19대 국회도 시작하면서부터 삐걱거리고 있는 모양새가 오늘 내가 이야기 하려는 언론의 사명과 책임이 더 막중해지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영국이나 미국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에 언론제국을 건설한 Rupert Murdock(루퍼트 머독)의 예를 들어 보자. 그가 소유한 폭스뉴스(Fox News TV)는 이미 심한 정치 편향으로 화제가 되었고, 오래 전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수상으로 당선되었을 때에도 영국에서 그가 소유한 더 선지(The Sun)가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공인된 사실이다.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대표적인 <언론 및 표현의 자유>로 상징되는 미국에서조차도 사실 라디오나 TV속의 정치적인 레토릭은 저질스럽기 짝이 없을 정도로 편향성에 치우쳐 있다. 철저한 상업적 이용에 바탕을 두고 근거 없는 각종 루머나 의혹, 사실의 왜곡이나 과장 등 자극적인 내용을 보도하기도 한다.

      특히 좌우 이념 간의 품위 없는 정치적 레토릭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오죽하면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의 기본방침을 밝히는 연두교서에서 “최악의 본능”에 집착하기보다 “최선에 호소”를 택하는 역설적 관용의 정치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설적 관용의 정치를 차기 대권 후보자들에게 주문하고 싶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정치가 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은 영상의 시대, 미디어의 시대이다. 말하지 않으면, 또한 정확하게 보도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도저히 알 도리가 없다.

      미디어가 특정 사실을 보도함에 있어 같은 내용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니 “어떻게 보도 하느냐?”가 중요하고, 이를 단순 스트레이트나 기획, 혹은 심층기사 등과 같이 “어떤 형식으로 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그 동안 가난극복과 민주화 과정에서 권위적인 리더십으로 인해 특정한 계층이 파편적이고 부분적인 특수 이익에 함몰됨으로써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각종 부정부패로 인해 국민들은 실망하고 깊은 상처를 받아왔다. 한국의 방송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곧 언론의 발전과 직결된다. 하지만 국민의 기대치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언론은 언제나 부분적이고 파편화된 이익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사실 독재 권력과 부당한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한 우리 국민들의 민주적 의식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민주주의가 우리사회에 제대로 정착되었다고 할 만 한 데도 여전히 그런 낙관적인 생각에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인쇄매체나 방송매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쇄매체나 방송매체 할 것 없이 모두가 같은 내용에 대해 보도하고 있음에도 각각의 신문사나 방송사가 내거는 프레임은 다르다. 물론 각 신문사나 방송사의 정치적 이념이나 추구하는 가치에 기인하지만 문제는 그로 인해 계층 간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 분열이 초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언론이 갖고 있는 이익 중심의 가치와 이익 극대화를 위한 자극적 쟁점화 때문이다. 즉, 언론의 이해 타산적 관점과 이중적 잣대를 통한 선택과 배제, 기업으로서 언론의 이익과 부합되어 나타나는 문제라고 하겠다.

      현대사회에서 신문이나 방송은 어떤 사실에 대해 진실이냐 혹은 거짓이냐를 결정하는 힘을 갖고 있고, 특정 가치를 우리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둔갑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언론의 힘은 곧 민주주의에서 나오고, 민주주의의 근간은 자유와 책임이며, 이 모두는 오로지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결국, 언론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언론의 자유와 책임은 국민의 이익과 직결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론이 특정 사실을 국민들에게 전달함에 있어 철저한 공정성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더구나 이제 곧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한국 언론의 공정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2년 전보다 상당히 후퇴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언론재단에 의하면, 2012년 4월부터 5월까지 오프라인 매체 970명의 기자를 대상으로 언론인 의식조사를 벌인 결과, 이들의 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평가는 2007년 3.06점(5점 기준)에서 2009년 2.62점으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성은 6개 평가항목 가운데 가장 하락폭이 컸으며, 이와 함께 언론의 전문성 평가에서도 2.92점에서 2.80점으로 낮아지는 등 전체적으로 언론 전반에 대한 평가가 2년 전보다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미래도 결정된다. 이처럼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미디어(언론)는 국민이 누구를 뽑고 선택할지를 결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언론)는 후보자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특정 이익이나 가치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미디어의 공정성은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절대 가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의 공정성을 위해서는 기능적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저널리스트로서 도덕적, 윤리적 소양을 깊이 있게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

      언론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며, 그 책임의 시작은 공정성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전문성은 저널리스트가 가져야 할 소양에서 비롯됨을 잊지 않을 때 공정성의 기치가 세워지고, 언론의 선진화가 국가 선진화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