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고법, 한국여성 강간한 미군에 집행유예...‘피해자 합의’ 이유미군들 “이해할 수 없는 판결”...미군 ‘성조지’ 가장 먼저 보도
  • ▲ 해외주둔 미군들을 주 구독자로 하는 '성조지(Stars and Stripes)' 29일자에 실린 관련 기사(화면 캡처).ⓒ
    ▲ 해외주둔 미군들을 주 구독자로 하는 '성조지(Stars and Stripes)' 29일자에 실린 관련 기사(화면 캡처).ⓒ

    
    지난 25일 대구고등법원에선 한국 여성을 강간, 폭행한 미군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열렸다.

    선고결과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 여성에 대한 폭행 및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기소된 파렴치한 범죄자에 대한 항소심 선고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형량이 가벼웠다.

    1심 법원은 가해 미군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를 했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형량을 1심의 6분의 1로 줄이고,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파격적인 관용을 베풀었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어느 때보다 높다. 성범죄에 대해 그 동안 상대적으로 관대한 형량을 선고해 비난을 자초했던 법원도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잇따라 중형을 선고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국민정서나 법원의 분위기를 보더라도 대구고법의 이번 판결은 ‘특별’하다.

    그런데 이 납득하기 힘든 판결을 가장 먼저 “이해할 수 없다”고 보도한 것은 국내가 아닌 미국의 언론이었다. 그것도 사건 가해자인 해외 미군들이 보는 신문이었다.

    29일 해외주둔 미군들을 위한 군사전문지인 ‘성조지(Stars and Stripes)’는 대구고법의 항소심 판결을 비중있게 보도하면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여기서 더 주목되는 것은 신문의 반응이다. 가해자인 미군을 두둔하지 않겠냐는 막연한 예상과는 달리 이 신문은 강한 어조로 판결을 비판했다.

    “한국에선 성범죄자라도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하면 형을 감면받는다”

    “용서받을 수 없는 성폭행 피해자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풀려나는 것을 미군들이 오히려 의아해한다”
    -미군 ‘성조지(Stars and Stripes)’ 29일자 기사 중 일부

    신문의 논조에선 한국과 한국 사법부에 대한 조롱의 느낌이 읽힌다.

    미국은 물론 서구유럽에서 강간, 강제추행 등 성폭력은 살인 못지않은 중대범죄다. 가해자가 누구든 관계없이, 성폭력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이며 가해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자’로 낙인이 찍힌다.

    그런 그들에게 피해자와의 합의를 이유로 강간 사건 피고인이 석방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다.

    특혜에 가까운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나온 것도 부끄러운데 이를 가장 먼저 비판한 곳이 미국의 언론이다.

    대한민국 법원과 언론이 약속이나 한 듯 ‘뻘짓’을 하며 국가 이름에 먹칠을 했다.

    한꺼번에 쉽게 끓어올랐다 한순간에 식어버리는 특유의 냄비근성이 이번 일의 원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성 법관 중심의 보수적인 법원 풍토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언론의 비판기능 상실이다.

    비록 지방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주한미군이 일으킨 강간사건의 고등법원 판결에 대해 국내 언론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당장 ‘성조지’는 이른바 ‘효순, 미선양 사건’에 빗대 한국인들의 냄비근성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동두천에서 일어난 신효순양과 심미선양의 사망사건은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한국사람들을 분노하게 한다”

    “장갑차 운전 실수로 인한 사고에는 그렇게 분노하면서, 어린 한국여성을 폭행·강간했는데도 풀려나는 미군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다”
    -'성조지' 같은 기사

    성조지는 서울 용산에서 근무하는 미군 병사들의 반응도 실었다.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런 자에게 형을 감면해 준 것은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일”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한국사람들도 같은 의문을 가질 텐데 왜 그를 풀어주느냐?”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가해 미군이 3년 안에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만한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는다면 사실상 아무런 제약 없이 생활할 수 있다.

    어린 여성의 인생을 파탄내고도 합의만 하면 풀려날 수 있는 나라, 구속현장에는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면서도 정작 판결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 나라, 권위주의적 사법부와 냄비 언론이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