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14세 이상 지적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합의로 간주되면 처벌 어렵다”“지적 장애 가진 청소년에 대한 성폭력 문제는 보다 엄격히 다뤄야”
  • 최근 잇단 성범죄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성범죄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대해서는 사법부 또한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성범죄는 여전히 일어난다. 그 중에서도 아동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만 14세 이상의 청소년이나 지적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는 애매한 제도 때문에 자칫 피해자와 그 가족만 더 큰 고통을 받는 경우가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지적 장애 성인 여성 피해 사례들

  • ▲ 성범죄자 발찌ⓒ자료사진
    ▲ 성범죄자 발찌ⓒ자료사진

    2008년, 경북 포항 외곽에 있는 한 마을. 이 마을에는 지적 장애가 있는 11살 난 딸과 함께 사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 또한 지적 장애인. 그런데 이 마을 인근 주민 중 일부가 그들 모녀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 하지만 이 모녀는 ‘성폭행’이라는 게 뭔지조차 몰랐기에 계속 당하기만 했다. 한 버스 기사는 이들 모녀를 2년 동안 번갈아 성폭행했던 사실까지 밝혀졌다.

    이들 모녀의 비극은 딸의 선생님이 우연히 사실을 알게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딸의 선생님은 성폭행 사실을 알게 된 뒤 인터넷에 이 모녀를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한편 언론에서 이 사실을 알렸다. 결국 공중파 시사프로그램과 주요 언론이 나서면서 모녀는 보호기관에 수용됐고, 검찰이 이들 모녀를 괴롭힌 자들을 수사해 처벌했다. 하지만 이들 모녀를 성폭행한 자들은 2년 동안이나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올해 초, 부산에서는 지적장애 2급인 A씨(20, 여)는 친구가 직업교육을 받고 있는 사회복지관을 찾았다. A씨는 지적장애로 지적 수준은 5~7세에 불과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성숙한 여성이었다. 이때 사회복지관에서 공공근로를 하던 김 某 씨(40)는 A씨를 보고선 흑심을 품었다. 김 씨는 판단력이 흐린 A씨에게 접근해 환심을 산 뒤 술자리를 만들었다. 김 씨는 A씨에게 강제로 술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뒤 성폭행했다.

    지적 장애 청소년 피해 사례

    지난 5월 경북의 한 도시에서는 지적 장애를 가진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피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증거 불충분에 따른 무혐의로 처리됐다.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난 강성미(가명, 15세, 여) 양은 자라면서 지적장애까지 생겼다. 현재 강 양의 정신연령은 8세 수준. 그나마 어머니가 3살 때부터 특수교육을 시킨 끝에 일반 중학교에 입학했다. 이런 강 양은 뒤늦게 학교에 입학한 어머니가 기숙사 생활을 한 때문에 외롭게 지냈다. 어머니가 없을 때 강 양은 혼자서 게임이나 채팅을 하며 외로움을 달랬다.

    강 양에게 일이 생긴 건 지난 5월 하순 경. 심심해서 채팅을 시작했다. 강 양은 채팅 사이트에 ‘○○○에 사는 여중생-여고생 구합니다’라는 제목을 보고선 클릭했다. 채팅방에는 그 지역에 사는 대학생 M 씨(24. 대학생. 공무원 시험 준비)가 있었다. 대학생 M 씨는 강 양의 휴대전화 번호를 얻은 뒤 150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며칠 동안 끈질기게 유혹해 자신의 자취방으로 끌어 들여 성관계를 맺었다.

    M 씨는 이후에도 강 양에게 연락했고, 성관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강 양은 한 차례 더 M 씨의 자취방을 찾았다.

    하지만 이후 강 양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혼자 멍하게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졌다. 친구들에게 임신이나 성관계가 뭔지를 묻는 일도 있었다. 이런 강 양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는 딸을 다그쳤다. 이렇게 M 씨를 알게 된 강 양의 어머니는 M 씨와 만났고, M 씨는 그 자리에서 사죄를 했다.

    하지만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는 사람이 15살에 불과한데다 지적 장애를 가진 미성년자를 유혹해 성관계를 가진 건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일. 강 양의 어머니는 경찰에 M 씨를 고발했다. 하지만 미성년자 보호법에 따라 M 씨가 처벌받을 거라 생각했던 건 그녀의 착각이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강 양이 첫 성관계 이후 M 씨와 통화를 하고 찾아간 것, 강 양이 또래 친구들에게 성적인 문제에 대해 상의한 점 등을 이유로 서로 합의 하에 관계를 맺은 것으로 간주된 데다 성폭행이라고 할 만한 증거가 부족한 점 등으로 인해 무혐의로 결론이 난 것이다. 이에 강 양의 어머니는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요. M 씨의 진술서 보고선 분통이 터졌습니다. 채팅방 제목이 ‘○○○에 사는 여중고생 구합니다’라니요? 그렇다면 그 자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청소년들을 유혹하려 했던 거 아니겠습니까?”

    반면 M 씨에 대해 잘 아는 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M 씨는 강 양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나중에 자기가 강 양을 책임질 거랍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강 양도 ‘M 씨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고 그러더군요. M 씨의 행동이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일이지만, 법적인 부분에서는 그렇게 판결이 나와 뭐라고 말하기가 그렇습니다. 다음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겠지요.”

    ‘만13세’로 달라지는 성범죄 처벌 기준

    강 양 사건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법 조항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만 13세 이하의 청소년과 성관계를 맺을 경우 아동보호법에 따라 이유를 막론하고 처벌을 받게 된다. 반면 만 14세부터 18세까지는 청소년 성보호법에 따라 성매매, 거짓말이나 협박에 의해 성관계를 한 경우에는 처벌을 받는다. 특히 ‘그루밍 처벌법’이라고 해서 채팅 등을 통해 금품 등을 미끼로 청소년들을 성매매로 유인하는 경우에도 처벌받는다. 하지만 청소년이 ‘좋아해서’ 상대방과의 합의로 성관계를 맺었을 경우에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같은 점이 (M 씨의 경우가 아니라) 나쁜 뜻을 품은 자들에게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겉으로는 성숙하지만 정신적으로 미숙하거나 판단력이 약한 지적 장애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이들을 노리는 자들이 내뱉는 감언이설의 속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법조계에서도 고민이다. 강 양 사건을 아는 해당 지역의 법조계 관계자는 “이런 문제는 참 난감한 사건이다. 우리 상식에서 도덕적으로는 상당히 문제인 사건이지만 제출된 증거나 조사 결과에 따라 현행법 상 죄가 안 될 경우에는 처벌하기가 어렵다”며 “항고 상태이니 일단 고등법원의 판결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부산여성장애인연대 부설 성폭력상담소 장명숙 소장은 “100통이 넘는 문자를 보내고 장애 청소년을 유인했다는 점은 분명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또 “올해 4월 15일 ‘성폭력 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이 법에 따르면 장애를 가진 여성 또는 사람에 대해 간음하거나 추행한 자는 형법에 따라 처벌된다”며 “장애를 가진 여성이나 청소년을 유혹하는 행위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같은 사례를 두고도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왔지만, 장애 여성 또는 청소년들을 노리는 성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가운데 ‘만13세’와 ‘만14세’로 나뉘는 법률 상의 허점을 이대로 놔둘 경우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할 소지가 있다는 데는 법조계와 여성계 모두가 공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