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덕수 주미대사의 전격적인 사의와 교체 배경을 읽는 `열쇠'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보인다.
    한 대사는 지난해 10월 한미 FTA가 미 의회를 통과한 이후 방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지만 재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과 국무부도 한 대사에게 두터운 신뢰를 보이고 있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현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대사직을 수행할 것이라는게 지배적 관측이었다.

    한 대사는 오는 20∼24일 재외공관장 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미국 여러 주(州)를 순회하며 한미 FTA 발효에 대비한 후속 `아웃리치'(outreach. 지역여론에 대한 교육.홍보활동)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전후사정으로 미루어 한 대사의 돌연한 사의는 며칠 사이에 청와대의 판단에 따라 결정됐을 가능성이 높다.

    한 대사는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직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한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 대변인이 16일 한 대사의 사의 표명사실과 사표 수리 방침까지 동시에 속전속결로 발표한 것도 이 같은 흐름을 드러낸다.

    여권과 외교부의 분위기상 한 대사의 교체는 `경질'의 성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임기를 1년밖에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주미대사로 기용하기 위해 한 대사가 갑작스레 자리를 비켜주는 모양새라기보다는, 한 대사를 다른 요직에 기용하기 위해 주미대사를 교체키로 했다는 게 유력하다.

    유임되는 방향이던 한 대사의 거취가 갑작스레 변화한 것은 한미 FTA를 둘러싼 국내 여론 동향이 심상치 않고 4.11 총선을 앞두고 이 문제가 쟁점으로 급부상한 국내 사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 대사는 `한미 FTA의 전도사'로 불린다. 이 타이틀은 이명박 정부에서 붙은게 아니라 노무현 정부때부터 따라다닌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부총리겸 재경부 장관을 지냈고 대통령 직속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겸 한미 FTA 특보를 지냈다. 또 옛 상공부에서 경제관료로서 잔뼈가 굵은데다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했고 '무역 개방의 전사'임을 자처해왔다.

    전(前) 정부에서 총리까지 지냈지만 정권교체로 바뀐 정부에서 요직인 주미대사로 발탁된 것도 한미 FTA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를 주미대사로 기용한 가장 큰 배경은 한미 FTA의 원활한 의회 비준이라는 목표때문이었다.

    민주당인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초 한미 FTA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탓에 미국내 여론을 돌리고 미 행정부와 의회를 설득하는게 한 대사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결국 미국내 정치의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지난해 10월 한미 FTA는 미 의회에서 비준됐다.

    그러나 문제는 매듭되지 않았다. 미국내 불은 껐지만, 한미 양국의 국회 비준 이후 한국내 한미 FTA에 대한 `역풍'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고 야당이 `정권교체후 한미FTA 폐기'를 주장하는 상황까지로 확산됐다.

    이 국면에서 국내에서 치솟는 한미 FTA 불길을 잡기 위해서 `한덕수 카드'를 다시 활용하기로 여권 수뇌부는 최근 가닥을 잡았다는 후문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이l어 한미 FTA를 추진하는데 일관된 노선을 견지한 대표적 인물인만큼 현 시점에서 한미 FTA 역풍에 대응하는데 한 대사만한 사람이 없다는 데 의견을 모은 셈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때 각료로서 한미 FTA에 찬성했다가 노선을 바꾼 민주통합당 지도부를 향해 '책임성, 신뢰성, 일관성' 문제를 부각시키는 여권으로서는 한 대사의 한미 FTA 전선 투입의 정치적 효과가 적지 않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 대사는 곧 물러나는 사공일 무역협회장의 후임으로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FTA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무역협회장을 맡을 경우 한 대사는 이 타이틀을 갖고 다시 한미 FTA의 전도사 역할을 할 전망이다.

    주미대사로서 미국내 여론을 설득하는 활동에 주력했다면, 이제 국내 '아웃리치' 전선에 투입되는 셈이다.

    그러나 한미 관계가 최상인 상황에서 국내적 요인으로 주미대사가 갑작스럽게 바뀌는 상황은 외교적으로는 매끄럽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을 전망이다.

    외교부는 한 대사의 교체 사실을 공식 발표하기전에 외교 경로를 통해 국무부에 교체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