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현업부서 중시...‘민원 포퓰리즘’으로 이어질 수도 박 시장 취임 후 시위 증가, “시장 나와라”현장 중시하는 업무스타일, 역기능 초래할 수 있어
  • ▲ 현장을 강조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정운영과 인사원칙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현장을 강조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정운영과 인사원칙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민원인들의 시위도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18일 서울시청 앞에서 벌어진 뉴타운 지정 해제 시위.ⓒ 사진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8일 과장급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복지와 보육, 상수도, 재해방지 등 그동안 인사에서 다소 소외됐던 경륜과 능력을 갖춘 현업부서 사무관들이 대거 발탁됐다.

    이번 인사를 놓고 박원순 시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취임 첫날 시청 1층 민원실을 들러 담당 공무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박 시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장’을 강조했다.

    ‘갈등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중시하는 그가 현업부서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묵묵히 현업부서에서 민원인을 상대하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중견간부들의 승진은 반가운 일이다. 현업부서 공무원들의 사기를 높여 결과적으로 민원인들의 만족도가 올라갈 것이란 평가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우려도 없지 않다.

    지난 1일 늦은 오후,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2동 2층에는 중년 남성 20여명이 몰려와 복도를 점령했다. 이곳은 수시로 기자설명회가 열리는 브리핑룸과 기자실이 있는 곳이다.

    이날 이곳을 점거한 이들은 서울시내 법인택시 회사에 소속된 운전기사들로, 서울시가 13년째 개인택시면허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며 박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희한한 일은 이들이 몰려간 곳이 박 시장의 집무실이 있는 시청 본청이 아니라 브리핑룸이 있는 별관이란 점이었다.

    이날 박 시장은 전남 여수에서 열린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참석을 위해 자리를 비웠다. 따라서 기자들에게 고충을 호소하기 위한 방문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요구한 건 취재요청이 아니라 ‘박 시장과의 면담’이었다.

    박 시장 취임 후 서울시청 앞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덕수궁 돌담길 앞 시위대의 모습은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지난 1월 한 달 동안만 용산개발 반대, 뉴타운 지정 철회, 우면산 수해보상 등을 요구하는 민원인들이 시청 본청 앞 덕수궁 돌담길을 점거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대부분 두 가지다. 하나는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관철이고 다른 하나는 박 시장과의 면담이다.

    시위가 늘어나면서 시위대와 시청 방호원과의 실랑이도 잦아지고 있다. 때론 고성이 오가며 몸싸움 직전의 험악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현장을 중시하고 즉석에서 답변을 하기도 하는 박 시장의 업무스타일이 민원인의 시위를 촉발시킨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박 시장은 지난달에도 한 트위터 이용자가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경호동 폐쇄”를 요청하자 “(담당부서에)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고 즉석 답변을 달아 곤욕을 치렀다. 소식을 접한 언론이 확인을 구하는 과정에서 담당 부서가 “그런 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박 시장의 즉석지시가 물의를 일으킨 건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해 말에도 금연공원 안에 흡연구역을 설치하려던 계획을 시민단체 대표의 말 한마디에 즉각 철회해 실무 공무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아스팔트 방사선 현장에서 즉각적인 도로 전수조사와 역학조사를 지시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왔다. 결정의 당부를 떠나 “너무 가볍다”는 지적이다.

    천만 서울시민의 살림살이를 책임진 시장의 언행이 너무 즉흥적이란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기엔 박 시장이 짊어 진 책임이 너무 크다.

    현장과의 소통, 현업부서를 중시한 승진인사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으로 박 시장 취임후 부쩍 늘어난 민원인들의 시위 역시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것이다. 민원인들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대책을 요구하기 보다는 박 시장과의 면담부터 요구한다는 점이다.

    시민단체 대표에게는 뛰어난 갈등조정능력이 행정능력보다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은 다르다.

    박 시장은 갈등조정자이기에 앞서 한해 21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운용하는 서울시의 수장이다.

    현장과 현업에 대한 박 시장의 관심이 ‘민원 포퓰리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발목잡기’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시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공무원들로서는 이해관계가 첨예한 민원처리에 더욱 민감해 할 수밖에 없다.

    이같은 상황은 민원인들 사이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현업부서 직원들의 부담을 오히려 늘리는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다.

    ‘현장’을 앞세운 박 시장의 인사원칙과 시정운영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더 신중한 처신이 필요하다”는 우려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