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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례를 치르고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군 최고사령관에 올라 자신의 시대를 연 지 꼭 한 달이 된다.
30년 넘게 북한 권력의 핵이었던 김 위원장의 부재에도 김 부위원장 시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인다.
차근차근 권력이양이 이뤄지고 있을 뿐 아니라 김 위원장이 해오던 활동을 김 부위원장이 대체하면서 권력의 공백도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김 부위원장의 힘이 커지면서 세력 간의 갈등과 숙청 등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되면 권력 내 불안정성이 증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훈 내세워 신속한 권력승계 =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죽기 전에 남겼다는 '10·8유훈'을 내세워 김 부위원장을 권력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8일 '고귀한 유훈, 간곡한 당부'라는 제목의 글에서 "장군님께서는 지난해 10월8일 김정은 동지의 위대성에 대해 말씀하면서 김정은 부위원장을 진심으로 받들어야 한다고, 일꾼들은 당의 두리(주위)에 한마음 한뜻으로 굳게 뭉쳐 일을 잘해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소개했다.
유훈의 내용 전체가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지만 김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권력운용을 당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유훈에 따라 지난달 30일 당 정치국은 확대회의를 열어 김 부위원장을 인민군 최고사령관직에 추대했다.
2인자로 평가되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해 기득권을 갖고 있는 북한 지도부로서도 김 부위원장 이외의 대안을 마련하기 힘든 상황이라 김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체제유지를 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김 부위원장은 최고사령관에 오른 뒤 새해 첫날 '근위서울 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을 시찰해 김 위원장의 선군통치라는 정책노선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또 새해 첫날인 1일 당·정·군 고위간부들과 공연을 관람하고 설인 23일에는 국가연회를 베풀면서 북한체제를 끌고온 지도부와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보폭을 외교무대로까지 넓혀가는 모양새다.
그는 김 위원장의 사망에 조전을 보내온 각 국가 정상들에게 답전을 발송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28일 전했다. 외교무대에 북한의 최고지도자임을 각인하고 사실상 외교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는 셈이다.
◇주민 속으로 파고드는 새 지도자 = 북한주민들 속에 새 지도자 김 부위원장의 존재감을 심는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2009년 1월 후계자로 내정된 지 채 3년이 안됐고,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에서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지 1년을 조금 넘긴 것에 불과해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2일 '함남의 불길'로 유명해진 함경남도를 시작으로 평양시 등 북한 전역에서 결의모임이 열려 김 부위원장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또 청년, 군, 여성, 근로단체 등 각계각층에서도 김 부위원장의 유일영도를 받들겠다는 의지를 모았다.
언론매체들을 통한 우상화도 본격화되면서 김 부위원장이 16세 때 영군술에 관한 논문을 쓴 `사상이론의 천재'라는 주장을 비롯해 그를 전지전능한 지도자로 띄우는 선전도 등장했다. 최근에는 '경애하는 어버이'의 반열에까지 끌어올리려는 시도까지 포착된다.
조선중앙TV는 김 부위원장의 생일인 지난 8일 '백두의 선군혁명 위업을 계승하시어'라는 김 부위원장의 과거 활동을 담은 기록영화를 방영했다. 여기에 2009년 4월5일 김 부위원장이 아버지인 김 위원장과 함께 관제지휘소를 방문해 '광명성 2호 위성'(장거리 로켓) 발사장면을 참관하는 모습을 담은 것도 대(對)주민용으로 볼 수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이번에 인공지구위성(인공위성)을 요격하겠다던 적들의 책동에 반타격을 가한 것이 우리 김 대장(김정은)"이라며 "그가 반타격 사령관으로서 육해공군을 지휘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는데 푸에블로호 사건 때 김 위원장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김 부위원장은 최근 군부대 및 경제현장을 시찰하면서 군, 주민과 스킨십에도 힘을 쏟는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끈다.
격의 없이 군인들과 양쪽으로 팔짱을 끼거나 눈물을 흘리는 군인의 손을 꽉 잡는 장면이 수차례 목격되는데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모습을 따라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장기적으론 권력갈등·불안정 개연성 = 김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지도체제에 북한 지도부가 단결하면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안정이 지속되면서 김 부위원장의 권력이 공고해졌을 때 새로운 갈등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김 부위원장이 새 권력체제를 구축하고 자신의 사람을 채워넣으면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세력이나 선군정치의 핵심에 서왔던 군부와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김 부위원장이 자신을 뒷받침할 사람들을 중용하고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지도급 인사를 숙청 등을 통해 제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김정은 체제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다른 세력을 품어내고 협조를 끌어내느냐에 정권 안정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29일 "현재로서는 북한 지도부의 이해 일치로 김정일 위원장 사후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김정은과 권력엘리트, 권력엘리트 내부의 상호관계가 변화하면서 위기에 봉착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