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28일까지 ‘애도기간’…김정은 중심으로 장의위원회 구성중국 체류 중인 김정남, 북한 귀국 및 향후 활동이 관건 될 듯
  • 19일 정오 北조선중앙방송과 조선중앙통신은 ‘희대의 살인마’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전했다. 세계의 눈은 김정일 이후 누가 북한의 권력을 잡을 것인지에 쏠리고 있다.

    김정일 장례위원회 위원장 맡은 김정은

    북한은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전한 뒤 김정은을 위원장으로 하는 장의위원회 232명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28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선포했다.

    북한이 발표한 장의위원회 명단에는 김영남, 김영춘, 최태복, 강석주, 김경희, 김양건, 최룡해, 장성택, 리태남, 오극렬, 리을설 등 뉴스에 자주 나오던 고위층들의 이름은 대부분 들어 있었지만 김정일의 큰 아들 김정남의 이름은 없다.

    이 같은 장의위원회 명단을 보고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김정일로부터 ‘성공적’으로 권력을 승계 받은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탈북자나 북한 주민들은 1983년생인 김정은이 북한의 권력을 성공적으로 이어받지 못했다는 주장을 많이 하고 있다.

    인민군 출신 탈북자들의 의견도 흥미롭다. 최근 인민군 군관들 사이에서는 ‘김정은이 김격식과 함께 연평도 포격도발을 하는 바람에 오히려 남조선 군대가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탈북자 등은 이런 문제 때문에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죽고 나면 김정일의 친족이나 측근이 북한을 실질적으로 지배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실제 탈북자들 중 ‘평양 출신’들의 경우에는 ‘김정은 뒤에는 김정일의 동생인 김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이 있다’며 ‘김정일이 죽고 나면 이들 부부가 수렴청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자주 내놨다. 18일(현지시각) 英<파이낸셜타임스> 또한 ‘김정일이 죽은 뒤에는 그의 여동생 김경희가 체제수호의 상징이 될 것’이라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분석’에서 빠져 있는, 더 큰 변수가 지금 ‘중국’에 있다. 바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다.

    김정남, 북한 권력의 ‘다크호스’ 될까?

    1971년 생인 김정남은 김정일의 둘째 부인 성혜림의 아들이다. 세째 부인인 고영희가 낳은 김정철, 김정은과는 이복형제다.

    김정남은 유럽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스위스 제네바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마카오, 홍콩 등을 드나들며 김정일의 일을 처리했다. 대표적인 것이 39호실 산하 대성무역회사, 광명성총회사 등 김정일의 비자금 통로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일이었다.

    탈북 전 통일전선부에서 ‘대남사업’을 맡았던 시인 장진성 씨에 따르면, 39호실은 90년대  북한에 처음 나타난 ‘자본가’였던 오극렬의 아들, 북한골프협회 회장의 딸, 리을설의 맏사위, 리용철의 맏딸 등이 만든 ‘기업소’를 모태로 한다. 이들은 김정남의 추종세력이 된다. 김정남은 이들과 함께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동시에 부를 축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2000년 초 <월간조선>의 우종창 기자가 마카오에 있던 39호실 산하기관과 김정남이 사는 집을 추적 취재해 밝혀낸 적도 있다. 이후 서방 언론들 앞에 거침없이 모습을 드러내던 김정남은 아예 중국에 눌러 앉았다. 김정남이 김정일에게 쫓겨났다는 소문도 돌았다.

    ‘중국식 개혁개방’ 언급했다 쫓겨난 김정남

    김정남이 쫓겨난 이유는 ‘중국식 개혁개방을 할 것, 3대 세습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버지를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2000년 초 김정남은 평양 보통강 호텔에서 추종세력과 화교 상인들을 모아놓고 파티를 벌였다고 한다. 김정남은 이 자리에서 '내가 수령의 대를 이으면 지금처럼 하지 않는다. 중국식 개혁·개방을 해 북한경제를 재건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발언을 누군가 김정일에게 보고한 것. 결국 김정남은 김정일에게 ‘혁명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중국에서 ‘망명 아닌 망명’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김정남은 이후로도 중국에 머물려 김정은의 3대 세습을 ‘비판적 지지’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김정남은 2010년 10월 日<아사히TV>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 하지만 (북한의 세습에는) 나름대로 그럴만한 내부 요인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고, 2011년 10월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아버지(김정일)도 (3대) 세습에 반대했지만 국가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며 북한의 권력 세습에 대한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태도’를 가진 김정남은 중국 공산당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親中성향이면서 중국식 개혁개방을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지금도 김정일의 비자금을 조달하는 등 실질적인 북한 외화관리 책임자다.

    ‘돈줄’ 김정남 vs. ‘주먹’ 김정은, 승자는?

    한편 김정은은 20대 초반 보위사령부 대좌(한국군 대령에 해당)로 시작해 북한 내 공안기관들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군 생활을 한 적이 없었기에 ‘특별한 과외’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은 총참모장(한국군 합참의장에 해당)을 지내던 김격식에게 4군단장으로 갈 것을 ‘부탁’했다. 이유는 김정은에게 ‘과외’를 시키기 위해서였다. 4군단은 남침전술에서 핵심역할을 맡는 부대로 관할 지역의 포병 전력이 강력한데다 김영철이 지휘하는 정찰총국의 특수부대 전진기지도 많아 ‘속성과외’를 받기에 알맞았다. 이후 김정은은 남한에 대한 도발로 ‘과외’를 마쳤다.

    이처럼 김정일이 갖고 있던 권력 중 김정은은 북한 내부를 장악하는 데 필요한 무력과 정보력을, 김정남은 통치에 필요한 자금력을 나눠 갖고 있다. ‘배후’에 버티고 있는 세력들 또한 북한 내부 시각에서 볼 때는 막상막하다. 김정은 뒤에는 김경희, 장성택 등 김정일 추종세력들이, 김정남 뒤에는 중국 공산당이 있다.

    김정은이 장성택 등의 ‘수렴청정’을 받을 경우 북한 체제는 지금과 같은 긴장과 대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김정은의 잔인함을 고려하면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도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김정남이 중국의 힘을 등에 업고 북한으로 귀국할 경우에는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김정남 또한 김정일의 아들인데다 원래 김경희, 장성택과의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여기다 김정남이 중국의 막대한 외화까지 끌어들인 후 대의원 간접선거 등 ‘형식상 선거’로 차기 지도자가 될 경우 김정은과 그 세력은 힘을 잃고, 북한은 ‘진짜 속국’의 길을 걷게 된다.

    때문에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접한 세계 각국은 북한의 ‘포스트 김정일’에 대한 갖가지 추측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