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곡식으로 정성스레 차린 차례상만 보면 북한에서 굶어죽은 부모님 생각에 눈물만 흐릅니다."

    추석을 닷새 앞둔 7일 오전. 강원 춘천시의 한 예식장에 춘천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 11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해마다 추석 명절을 맞아 경찰과 지역보안협력위원회원 등이 마련한 위문행사장의 한 귀퉁이에 이솔희(57ㆍ여ㆍ가명)씨가 연방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10여 년 전 고향인 북 강원도 원산에서 끼니조차 연명하지 못해 연이어 아사(餓死)한 부모님 등 가족 생각이 불현듯 났기 때문이다.

    이씨가 북한 보위부의 추격을 따돌리고 양강도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한 것은 2009년 1월이었다. 이씨는 제3국인 태국을 거쳐 추석을 며칠 앞둔 그해 9월 말 남한에 정착했다.

    올해로 남한생활만 꼬박 2년째이자 세 번째 추석을 맞이하는 이씨에게 추석은 가슴아픈 기억만 남아있다.

    5남매의 맏딸로 태어난 이씨는 부모님과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반평생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급기야 지난 97년부터 99년 사이 부모님과 남동생이 연이어 굶어 죽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후 이씨는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고자 고향을 떠나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넘나들며 물건을 사고파는 이른바 '국경장사'를 했다.

    그러나 음식 찌꺼기로 허기를 채워야 하는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그 사이 남편마저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때부터 이씨는 아예 북한을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2006년부터 시도했으나 막내 여동생이 중국으로 탈북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보위부의 감시는 날로 심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이씨는 출산이 임박했던 큰딸(32)과 군 복부 중이던 아들(30)을 북한의 고향땅에 남겨둔 채 막내딸(28)만 데리고 사선을 넘었다.

    이씨는 "남한에서의 추석은 조상의 은덕에 보답하고 넉넉한 인심을 나누는 정겨운 날이지만 북한에서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차례상에 올리기도 빠듯하다"며 "탈북 주민 상당수가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사선을 넘는 가장 큰 이유가 먹고 살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고향에서 추석 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들고 부모님, 남편, 남동생 중 누구의 묘소를 먼저 찾아야 할지 고민할 때가 가장 가슴 아팠다"며 "생전 부모님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효도하지 못한 것이 무척 한스럽다"고 울먹였다.

    이씨는 "탈북 사실을 미처 알리지 못한 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지만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하고 "언젠가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앉아 오순도순 추석의 정겨움을 나눌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며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