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전신주 공사 도중 우연히 김녕굴과 이어진 용천동굴 발견
  • 제주도 지역 전설에 따르면 북제주군 구좌읍 동김녕리에 자리잡은 김녕(사)굴에는 옛날에 큰 뱀이 살았다고 한다.

    일명 뱀굴로 불리었던 김녕굴에 살던 뱀은 어마어마하게 큰 데다 성격이 포악해 마을사람들은 매년 제사를 지내면서 처녀를 바쳤다.

    그러던 중 조선시대 중종 때 서련이라는 판관이 제주에 부임했다. 김녕굴에 사는 뱀 이야기를 전해들은 서련은 굿판에 나타난 뱀의 목을 베었다.

    제주도 지역에서 구전돼 오던 이 전설은 2005년 다시 관심을 받게 된다.

    한국전력에서 2005년 전신주 공사 도중에 우연히 김녕굴과 이어진 곳에서 용천동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용천동굴과 김녕굴이 맞닿은 곳에서는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칼과 창이 발견됐고 다른 곳에서는 제물로 바친 것으로 보이는 완전한 형태의 멧돼지뼈 1개체가 확인됐다.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 생물권지질공원팀 전용문 박사는 "처녀를 제물로 바쳤다는 구전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동굴에서 의식이나 제사는 치렀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 동물뼈 노출 모습ⓒ
    ▲ 동물뼈 노출 모습ⓒ
    2005년 발견 이후 문화재청은 용천동굴의 가치를 인정해 즉시 천연기념물 제466호로 지정했다. 이어 2007년에는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 '거문오름 용암동굴계'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류가 지표의 경사면을 따라 해안으로 흐르면서 만들어진 동굴군으로 전체 길이가 14㎞로 추정된다.

    이중 용천동굴은 아름다움에 있어 으뜸을 자랑한다.

    지난 25일 찾은 용천동굴의 입구는 관광자원으로 개발된 다른 동굴과 달랐다. 2005년 발견 당시의 전신주 공사 현장이 지금도 용천동굴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입구다.

  • ▲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지구인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위치한 용천동굴에서 발견된 글자모양. ⓒ
    ▲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지구인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위치한 용천동굴에서 발견된 글자모양. ⓒ
    10여m 높이의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자 바로 거대한 크기의 동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용천동굴의 길이는 주굴과 지굴 약 2.6km와 동굴 내 위치한 800m 크기의 호수를 포함해 약 3.4km에 달한다.

    용천동굴은 규모에 있어서는 크고 웅장하며 긴 용암동굴이지만 동굴 내부에는 석회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탄산염 동굴 생성물이 가득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희귀한 동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해안가의 조개껍데기로 만들어진 모래가 바람에 의해 동굴 위 지상에 흩뿌려졌고 이것이 다시 산성비에 녹아 동굴 안에 침투하면서 다양한 백색의 동굴 생성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 ▲ 나무뿌리 모양의 종유석ⓒ
    ▲ 나무뿌리 모양의 종유석ⓒ
    용천동굴은 현재 발견된 출입구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상류, 바닷가인 북쪽은 하류로 구분된다. 상류는 김녕굴과, 하류는 호수를 통해 바다와 맞닿는다.

    호수의 길이는 800m에 이르는데 수심은 8∼13m이고 호수 끝부분의 최대 폭은 20m에 달한다.

    호수 끝은 모래가 둑을 형성해 막힌 상태로 바다와 연결돼 있다.

    호수 내부에서는 총 3종의 어류가 확인됐는데, 특히 작년에는 눈이 없는 신종어류가 발견됐다.

    전 박사는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인데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동굴 내 호수에 살게 되면서 어류가 독립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 ▲ 나무뿌리 모양의 종유석ⓒ
    안타깝지만 이처럼 지질학적 아름다움과 고고학적 가치를 함께 지닌 용천동굴을 경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용천동굴은 발견 이후 학술적 탐사 이외에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공개할 계획이 없다.

    1천500여년 간 외부와 단절돼 있던 동굴인 만큼 보존하고 지켜야할 것들이 다른 일반 동굴에 비해 더 많기 때문이다.

    전 박사는 "용천동굴은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자연유산"이라며 "안타깝지만 간접체험 방식으로만 일반에게 공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은 용천동굴 내부를 촬영해 이를 3차원(D) 영상으로 재현, 세계자연유산 홈페이지에서 간접체험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동굴 입구 주변에 동굴 지형도와 각종 특성을 소개하는 표지판을 설치하면서 용천동굴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이들의 아쉬움을 달래줄 계획이다.
  • ▲ 호수 내부 고고유물ⓒ
    ▲ 호수 내부 고고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