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유 가스관 본격 논의, 北 6자회담 무조건 복귀 등 합의양자ㆍ3자 경제협력 사업, 북한 채무상환 문제 등도 조율한 듯전문가 "발표 내용 외에 미공개 이면 합의 존재 배제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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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의외의 합의는 나오지 않았다. 예상됐던 의제에 오히려 기대보다 낮은 수준의 합의가 이뤄졌을 뿐이다. 일단 공개된 러-북 정상회담의 성과만 놓고 보면 그렇다.
24일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 도시 울란우데에서 열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대통령 공보실장이 회담 직후 합의 사항의 일부를 공개하긴 했지만 4시간 30분 동안이나 이어진 두 정상 간 만남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나탈리야 티마코바 러시아 대통령 공보실장은 이날 러-북 정상회담 뒤 북한이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 재개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티마코바 실장은 "김 위원장이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6자 회담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밝혔다"며 "6자 회담 과정에서 북한이 핵물질 생산 및 핵실험을 잠정중단(모라토리엄)할 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회담 뒤 기자들에게 "김 위원장과 허심탄회하고 실질적인 대화를 했다"면서 북한이 자국을 거쳐 남한까지 이어지는 천연가스 수송관을 지지함으로써 가스관 건설에 합의할 수도 있다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대통령은 그러면서 김 위원장과 북한을 거쳐 남한으로 이어지는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를 협의하기 위한 3국(남북러) 특별위원회 발족에 합의했다고 부연했다.
이 발표로 보면 러-북 정상은 회담에서 주로 남북러 3국간 에너지 협력과 북핵 문제 등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 경유 가스관 부설 프로젝트에서의 진전이 눈에 띈다.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을 러시아 극동에서 한국까지 부설해 러시아산 가스를 한국으로 공급하기 위한 사업이다. 북한이 이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특별위원회에 참여할 의사를 밝힌 만큼 사업 추진이 상당한 탄력을 받게됐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긍정적 기대도 이같은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러시아는 2008년 북한 경유 가스관을 통한 천연가스(PNG) 도입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진전을 보지 못해 왔다.
전문가들은 북한 경유 가스관 사업이 실현되면 북한은 가스관 경유 비용으로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통과료를 받을 수 있고, 한국은 선박으로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할 때보다 수송료를 3분의 1 정도로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도 시베리아 극동 지역 생산 가스의 안정적 판로 확보라는 이익을 챙기게 된다. 이해 관계국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사업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북한 경유 가스관 부설 사업과 함께 같은 노선으로 연결되는 송전선 건설 프로젝트도 남북한에 적극 권유해 왔다. 극동 지역의 잉여 전력을 북한을 통과하는 송전선을 건설해 남한으로 공급하려는 구상이다. 러시아 측이 회담 후 언급은 않았지만 가스관 사업과 함께 러-북 정상회담에서 논의됐을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다.
특히 김 위원장은 메드베데프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 지난 21일 아무르주(州)의 부레이 수력 발전소를 방문해 전력 사업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표명했다. 가스관 건설에 북한이 전향적 자세를 보인 만큼 연결 사업으로 추진할 경우 경제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송전선 사업에도 관련국의 관심이 높아질 전망이다.
그동안 남북러 3국이 지속적으로 논의해온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사업도 역시 회담 의제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전반적인 분위기를 볼 때 양국이 TSR-TKR 연결을 위한 전초 사업인 북한 나선~러시아 하산 구간 50km 철로 보수 공사를 가속화하기로 합의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또 그사이 러-북 경제협력 관계 진전의 걸림돌이 돼온 북한의 옛 소련에 대한 채무 상환 문제도 거론됐을 수 있다. 세르게이 토르착 러시아 재무차관은 러-북 정상회담 전 울란우데에서 기자들에게 북한이 옛 소련에 진 채무가 약 110억 달러(약 11조9천억원)에 달한다며 이의 상환을 위한 협상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상회담에도 당연히 의제로 올려졌으며 러-북이 어느 정도의 이견 조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러-북 정상은 이같은 양국 및 남북러 경제협력의 핵심 사안들을 중점 논의하면서 동시에 양자 및 3자 경제협력 프로젝트들을 가로막아온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북한 측에 일정 부분 양보를 압박했을 수 있다.
그 결과물이 북한의 무조건부 6자회담 재개 수용과 핵 프로그램 중단 의사 표명이다. 물론 핵 프로그램 동결 여부는 6자회담 과정에서 논의할 사안이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종전 입장과 비교하면 상당히 진전된 입장이다.
러시아는 북핵 문제에서 김 위원장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이미 약속한 5만t의 밀가루 외에 식량 추가 지원이나 다른 형태의 지원을 약속했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와 북한이 공개적으로 밝힌 합의 사항 외에 이면 합의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