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르코지 주연에 캐머런 조연…그러나 오바마는 멈칫'
리비아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의 몰락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국가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3개국이지만 그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6개월간의 짧지 않은 리비아 내전이 종식된 것과 관련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주연 '작품'이 성공을 거둔 것이라는데 별다른 이견을 달지 않는다.
리비아 사태 초기 서방이 개입하기를 주저할 때부터 일관되게 유지해온 사르코지 대통령의 강경하고도 발빠른 대처가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르코지는 지난 2월 리비아 제2도시 벵가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면서 리비아 사태가 시작되자 가장 먼저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촉구하고 나선 데 이어, 3월 국제사회에서는 최초로 반정부 세력인 과도국가위원회(NTC)를 리비아의 유일한 합법적인 대표로 인정했다.
나아가 리비아 사태에 유엔이 군사개입할 수 있도록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대(對) 리비아 상공 비행금지구역 설정의 길을 열어놓은 것도 사르코지였다.
물론 최초의 리비아 군사 공격인 '오디세이 새벽' 작전을 감행할 때도 프랑스군이 선봉에 서서 공습을 단행했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고 국제분쟁에서 무력보다는 외교 수단을 선호해온 프랑스가 대외정책을 전환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리비아 사태 개입은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 속에 재편되는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한편 북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카다피가 21일 사르코지 대통령을 꼭 집어 언급한대로 석유를 비롯한 부존자원에 대한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실제로 프랑스의 리비아 원유 수입 의존도는 16%나 된다.
국내적으로는 내년 4월 대통령선거 재선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지난해 정년연장을 골자로 하는 연금개혁 시행 이후 떨어질대로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점에서 사르코지 대통령과 함께 리비아 공격에 가담한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리비아 내전 해결의 '조연'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처럼 공격의 최선봉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나토의 강력한 군사작전 추진에 적극 동조해 정치외교적 해결만 주장한 독일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리비아 내전 해결에 상당 부분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캐머런 총리는 특히 극심한 긴축정책으로 국방비를 대폭 삭감해야하는 등의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리비아 작전에 적극 가담하는 정치적 선택을 강행해 국제사회 여론을 주도해 간다는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세계 경찰'이라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리비아 사태에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왔다는 점에서 그다지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리비아 사태 초기부터 국제사회의 책임 분담을 강조하다 리비아 공격에 나서기는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핵심 전력을 철수시켰으며, 결국 구심점 역할을 포기하고 나토에 작전권을 넘겨주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지난달 공화당이 제출한 리비아 군사작전 전비 삭감안이 부결되기는 했지만 의회 승인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리비아전에 개입하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이 컸던 것도 이런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던 요인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