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안기부가 이인모 송환때 맞교환 시도...북한 눈치보기 '좌파 숙주 정부'가 제동
  • “김영삼 정부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씨를 북으로 보내주고 대신 북에 있는 내 아내와 두 딸을 교환하려는 은밀한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정부 고위직 인사의 방해로 실패했다”

    북한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오길남 박사(69) 가족의 구출 시도와 관련해 93년 정부고위관계자의 방해가 있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주장은 3일자 동아일보의 보도(‘통영은 지금…신숙자 모녀 구출 서명운동 들썩’)에서 나왔다.
    오길남 박사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93년 안기부가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씨와 자신의 가족(부인과 두 딸)의 맞교환을 은밀히 시도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된다’는 정부고위관계자의 방해로 실패했다고 말했다.

    오박사의 부인 신숙자 씨(69)와 두 딸 혜원(35), 규원 씨(33)는 90년대초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봤다는 탈북자의 증언을 끝으로 현재는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다.

  • ▲ 오길남 박사 탈북 후 독일에서 만난 윤이상이 북에서 가져와 오박사에게 건제 준 가족사진. 사진 배경이 요덕 수용소라는 탈북자의 증언이 있었다.ⓒ
    ▲ 오길남 박사 탈북 후 독일에서 만난 윤이상이 북에서 가져와 오박사에게 건제 준 가족사진. 사진 배경이 요덕 수용소라는 탈북자의 증언이 있었다.ⓒ

    오박사는 4일 <뉴데일리>와의 전화통화에서 93년 당시 이인모씨와의 가족 맞교환을 방해한 ‘정부 고위직 인사’가 한완상 통일부총리였다고 털어놨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김영삼정부는 김일성과의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목을 매었고,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의 무조건 송환은 북에 대한 일종의 선물이기에 오박사 가족 문제는 뒷전으로 미뤄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영삼정부가 들어서면서 좌파에 호의적인 인사들이 대거 정부요인으로 발탁되었는데 한완상 서울대교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삼정부에 대거 진입한 좌파 또는 좌파에 우호적 인사들이 대북정책 주도권을 잡으면서 '북한 눈치보기'식 정책결정이 이뤄진 것이다. 일부에선 이같은 김영삼정권을 좌파에 몸을 내준 '숙주정권'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 탓에 오박사 가족의 구출이 물건너 가게 된 것이다.

    오박사는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한 뒤 독일로 건너가 1985년 브레멘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박사는 독일 유학 중 ‘민건회’라는 재독 반한단체에 가입하고 1980년 독일로 정치적 망명을 했다.

    오박사는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 독일에 있던 북한 고정간첩 김종한과 윤이상의 회유로 가족과 함께 입북했다. 그러나 교수를 시켜 주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대남흑색선전에 이용되면서 공작원으로 일했다.

  • ▲ 오길남 박사.ⓒ 회복의 교회 블로그 캡처
    ▲ 오길남 박사.ⓒ 회복의 교회 블로그 캡처

    북한 체제의 실상을 알게 된 오박사는 독일로 돌아가 두 명의 유학생을 더 포섭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이때 오박사의 부인이 북한으로 돌아오지 말고 탈출해서 가족송환을 요청하라고 했고, 그는 독일로 오던 중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서 탈출했다.

    오박사는 그후 5년 동안 독일에 거주하면서 윤이상에게 그의 가족 송환을 간절히 요청했으나, 윤이상은 그의 요구를 외면하면서 재입북을 강요했다.

    오박사에 따르면 윤이상은 “주석님의 은혜를 저버렸다”며 “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가족은 죽는 줄 알라”고 협박했다. 윤이상은 오박사에게 북한에 있는 부인과 딸의 수용소 사진과 육성이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전하며 북한 복귀를 강요했다.

    윤이상의 강요와 협박을 거절하고 92년 서울로 돌아온 오박사는 자신의 입북 및 탈북과정과 북에 남겨둔 가족의 이야기를 쓴 책을 펴내면서 가족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오박사의 사연이 언론에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북한인권운동을 펼치는 한 시민단체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었다.
    '세이지코리아(www.sagekorea.com)'는 오박사의 사연을 접한 후 93년 출판됐다 절판된 오박사의 책을 다시 펴냈다. 도서출판 세이지에서 펴낸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이 그것이다.

    이 책은 독일 등지에서 반한(反韓) 활동을 했으나 북한에 대해서는 결정적으로 오판한 많은 지식인들에게 경종을 울린 '한국판 실화 파우스트'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은 북한을 접근하는 데 있어 진실을 추구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매우 가치있는 사실적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준다. 

    세이지코리아는 현재도 혜원, 규원 씨의 구출을 위한 UN청원 운동을 펼치고 있다.

    오박사의 사연이 널리 퍼지면서 그를 돕겠다는 움직임도 힘을 얻고 있다.
    오박사의 사연을 접한 김태훈 국가인권위위회 인권위원(북한인권특위 위원장)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 생환을 돕겠다고 약속하면서 20여년만에 처음으로 국가기관이 그의 가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부인 신숙자씨의 고향인 통영에서도 그녀의 모교인 통영여중 동문들을 중심으로 서명운동이 벌어지는 등 오박사 가족 송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오박사는 이번주 안으로 김태훈 인권위원을 면담하려 했으나, 오박사의 악화된 건강으로 성사여부가 불투명하다.

    김태훈 인권위원은 “오박사 가족의 비극은 가장 대표적인 북한인권침해사례”라고 규정했다. 적극적으로 관련 정보와 증거를 수집-분석해 북한인권침해 실상을 널리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김위원을 중심으로 국가인권위원회는 오박사 사건에 관한 사실관계를 체계적으로 규명,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 알리고 국제적인 이슈로 만들어 그의 가족 생환을 돕겠다고 밝혔다. 정부에 대한 ‘권고’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위원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북한인권침해의 상징과 같은 존재라면서 궁극적으로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해체를 목표로 하겠다고 덧붙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 1월 북한인권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3월 15일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를 개설하는 등 북한인권침해 실태 파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북한인권침해센터는 북한 정권에 의한 인권침해사례의 수집, 정리 및 분석, 보존, 정부 ‘권고’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센터는 앞으로 오박사 사건과 같은 사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데 힘을 쏟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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