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軍 배불러야 덜 잔인해져" 쌀 퍼주자..."탈북자 송금으로 남한경제 어려워" 망발도
  • 내가 만나는 엉터리 목사들  
     
     “원수를 사랑하라”며 악을 관용하는 죽음의 향도들
    金成昱   
     
     한국의 문제는 교회의 문제란 지적이 있다. 全인구 4분의 1 가까운 1000만 명이 기독교인이니 과장된 말은 아니다.
     
     사회에 만연한 從北(종북)주의·親北(친북)주의의 뿌리 역시 교회에 터 잡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교회에서 북한의 가련한 2천만 동포에 대한 憐憫(연민) 대신 김정일 정권을 도와야 평화가 온다는 僞善的(위선적) 평화주의를 배우곤 한다.
     
     지하 기독교인들의 殉敎(순교)행전이 지금도 어둠의 땅, 북한에서 멈추지 않는다. 수용소 시설에 기독교 신앙을 이유로 갇힌 이들이 1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오픈도어즈)마저 나온다. 그러나 한국 교회 主流담론은 북한주민 人權(인권)이 아니라 북한정권 支援(지원)이다. 공개처형과 정치범 수용소 문제는 물론 탈북자 강제송환·영아살해·강제낙태 등 죽어가는 동족의 절규에 침묵한다.
     
     김정은 등장 전후인 지난 1년간 북한에서 公開處刑(공개처형)된 사람이 확인된 숫자만 52명이다(출처: 북한인권백서2011). 그러나 일부 목사들은 김정은이 성경의 위대한 인물인 ‘요시야 왕’이 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시작했다. 邪惡(사악)한 정권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선 성도의 침묵을 유도하고 邪惡한 정권의 세습을 인정해 버린다. 그리고 한국의 1000만 기독교인들을 惡으로 이끈다.
     
     일부 목사들이 동원하는 성경적 논리는 간단하다. “원수를 사랑하라” “주린 자는 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惡에 대한 침묵, 방관, 동조가 아니다. 당신은 당신의 가족이 살인범에게 유린당하고 겁탈당하고 있을 때 “원수를 사랑하라”며 기도만하고 있을 것인가? 북한의 가련한 동족이 당신의 아내와 자식이라면 저들이 공개처형당하고, 강제송환·영아살해·강제낙태당하고 있을 때 기도만하고 있을 것인가?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惡에서 발을 떼고 惡을 중단시키라고. “사랑하는 자여 惡한 것을 본받지 말고 善한 것을 본받으라. 善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惡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요한3 2:11)” “公義(공의)로 허리띠를 삼고 誠實(성실)로 몸의 띠를 삼아, 입술의 기운으로 惡人(악인)을 멸하리니(slay)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惡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惡人(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시 97:10)”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惡人(악인)을 멸하리니 罪惡(악행)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시 101:8)”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북한정권이 저지르는 “백성을 파쇄하고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하는(시 94:5~7)” 악행에 침묵하고, 방관하고, 동조하라는 것이 아니다. 정치범수용소는 해체시키고, 공개처형은 중단시키며 영아살해·강제낙태를 저지하라고 명령한다. 악을 미워하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물맷돌을 들었고 그일라를 구했다.
     
     지금 당장 위급상황을 막을 생각은 안 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며 입과 눈과 귀를 막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북한동포가 당신의 가족, 아니 당신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말장난인가? 사람이 불에 타 죽는데 불을 끌 생각은 안 하고 무슨 짓인가?
     
     어제도 記者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거룩한(?) 목사를 보았다. 그는 김정은을 위해 기도하지만 죽어가는 2천만 주민을 위해서 기도치 않는다. 이런 류의 눈 먼 牧者(목자)들은 남한의 기독교인마저 벼랑 끝에 내모는 죽음의 嚮徒(향도)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남과 북의 갈등은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선과 악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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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부른 北韓軍이 덜 잔인할 것”이라며 北에 쌀 주자는 어느 목사 
      
     “탈북자가 북한에 달러를 보내서 남한경제가 어려워진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金成昱    
      
      현장을 돌다보면 별의 별 억지와 궤변에 부딪친다. 복잡한 논리로 떠들어 대지만 요지는 간단하다. ‘남한도 나쁘고 북한도 나쁘다’. ‘남한과 북한을 적당히 섞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類의 統一論(통일론)은 예외 없이 연방제, 6·15, 10·4로 귀결된다. 300만 餓死(아사)와 지옥의 땅이 된 북한의 현실을 외면한 환상이다.
     
     지난 주 만난 한 목사는 김정일 정권을 도와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기자님 생각해 보십시오. 북한에 주는 쌀이 군량미로 들어간다고 하지만 굶주린 군인이 우리에게 잔인하게 하겠습니까? 배고픈 군인이 잔인하겠습니까? 군인도 먹이는 게 하나님 뜻입니다.”
     
     천안함 46용사. 연평도 희생자 4명의 피가 마르지 않은 지금 나온 말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며 북한이 우리의 형제와 자식을 죽여도 계속 도와야 된다는 말이다.
     
     그는 “모니터링을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주는 쌀이 어디로 가는지 알 필요는 없다”며 “우리의 의무는 북한에 주는 것 까지”라고 말했다. 그리곤 예의 ‘주린 자는 먹여야 한다’는 성경을 인용한다. 물론 이런 이들은 공개처형·강제낙태·영아살해,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이들에 대해선 철저히 침묵한다.
     
     어제는 “북한의 정권이 아닌 주민을 도와야 하며, 남한에 탈북자 2만여 명을 도우면 북한의 취약계층 수십만에 돈이 직접 들어간다”는 記者의 주장에 혹자가 이렇게 말했다.
     
     “누가 그러던데요. 탈북자들이 남한의 달러를 중국을 통해서 북한에 보내니 남한 경제가 어려워진다고요”
     
     탈북자가 북한에 달러를 보내서 남한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오늘은 한 학생이 기자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교회수련회에 어느 목사 겸 교수님 한 분이 왔는데 “독일이 통일 이전 동서독 기독교 연합을 했듯 우리도 북한 조선그리스도연맹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외국서 공부도 했다는 이 목사는 “북한에 선교나 전도의 자유가 어느 정도 인정된다”는 말도 했다.
     
     북한은 쪽 성경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수용소로 보내거나 처형하는 곳이다. 조선그리스도연맹 역시 ‘主體神學(주체신학)’ 운운하는 가짜 기독교단체일 뿐이다. 대체 하나님을 팔아서 무슨 말을 뇌까리는가?
     
     한국의 기독교는 지난 60년 1000만 성도와 세계적 선교의 폭발적 부흥을 맞았다. 그러나 북한정권이라는 절대적 惡(악) 앞에 시험을 받고 있다. 김정일과 유착된 생계형 對北지원론자들을 중심으로 어둠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세례 요한이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외쳤듯 나 또한 지금 이렇게 외친다. “회개하라. 통일이 가까웠다. 북한의 가련한 2천만 동포의 분노가 당신들 눈앞에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