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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던 동생인데 이역만리 위령비에서 이름을 발견하니 가슴이 아파.."
동생과 나란히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동생의 위령비를 찾은 미군 老 해병의 눈에는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형의 미안함이 이슬로 맺혔다.
6.25전쟁 당시 미 해병 특무상사로 복무했던 마이크 머버쉬(88.펜실베이니아 거주) 씨는 17~19일 강원 양구에서 열리고 있는 제14회 도솔산 전적문화제를 맞아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해병대원 4명과 함께 옛 전쟁터인 해안면 `펀치볼(Puch Bowl)'을 찾았다.
그는 펀치볼지역을 돌아보다 당시의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위령비에서 전사한 동생의 이름을 찾는 순간 눈시울을 붉혔다.
머버쉬 씨는 "6살 아래의 동생 마일런과는 어렸을 때 사소한 일로 가끔 다투기로 했지만, 내게 친절하고 잘 따랐다"며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펀치볼을 보니 동생이 새까맣게 밀려오는 중공군과 힘겹게 전투를 벌였을 것 같다"고 가슴 아파했다.
그는 또 "펀치볼 전사자들을 위한 위령비 뒷면에서 동생의 이름을 발견하니 생각이 더 많이 나고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펀치볼은 머버쉬 씨의 동생처럼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미군이 이곳의 분지 지형이 마치 화채그릇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별칭이다.
머버쉬 씨는 지난 1967년 한.미 해병대 연합훈련시 한국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동생이 전사한 펀치볼 지역을 찾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이번 방문은 양구군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함에 따라 1942년 해병에 지원한 머버쉬 씨는 지중해 함상에서 6.25전쟁에 먼저 파병됐던 동생 마일런이 전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전사 당시 20살이었던 동생은 도솔산과 대우산, 가칠봉 등 1천m 내외의 고지들로 둘러싸인 양구군 해안면 펀치볼 전투에서 중공군과 싸우던 중 포탄을 맞고 1951년 9월 2일 전사했다.
이후 머버쉬 씨는 '한국의 자유를 위해 가서 싸우라'는 상급부대의 명령에 따라 동생의 뒤를 이어 한국전에 뛰어들게 됐다.
머버쉬 씨는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해 유엔군이 경기 문산 북방 사미천~임진강~강원 철원을 연결하는 일명 '제임스타운 라인'에서 주로 전투를 벌였다.
또 철원 인근의 '엉클 힐' 고지와 판문점 등 정전협정을 앞두고 전략적으로 유리한 곳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던 오늘날의 비무장지대(DMZ) 지역에서 중공군과 처절한 전투를 계속했다.
그는 "대규모로 밀려오는 중공군과 힘겹게 싸웠던 기억이 아직도 가장 인상 깊다"면서 "적이 나를 두려워하기를 바라며 힘껏 싸우고 또 싸웠다"고 회고했다.
또 "한국의 겨울이 너무 추웠다"며 "서울은 심하게 파괴되고 죽은 사람들이 널려 있었는데 지금은 몰라보게, 너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머버쉬 씨는 6.25전쟁의 포성이 멎은 뒤에는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는 등 1974년까지 군 생활을 계속하다 전역했으며 그 후에도 미 해병을 훈련시키는 활동을 하는 등 평생을 미 해병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한국전쟁을 비긴 것이라고 하지만, 많은 전투에서 승리함에 따라 남한이 오늘날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며 "전투를 이길 수 있게 해준 신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양구=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