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전투 승리로 이끈 철기 장군 39주기 추모식광복군 중장…광복 후 초대 국무총리․국방장관 겸임
  •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독립군을 키웠으며 광복군 참모장을 지낸, 무장독립운동의 표상인 철기 이범석 장군의 39주기 추모식이 오는 11일 오전 11시 서울현충원 영화관에서 열린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9일 “청산리전투를 대승으로 이끌었으며, 광복 후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철기 이범석장군 39주기 추모식’이 11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영화관에서 ‘철기 이범석장군 기념사업회(회장 서영훈)’ 주관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이범석 장군(1900년 10월 20일~1972년 5월 11일)은 서울 종로에서 출생, 1915년 여운형을 만나 중국으로 망명할 것을 결심하였으며, 그 후 혁명지도자 신규식을 만나 6개월간 항주군관예비학교를 거쳐 운남강무당(雲南講武堂) 기병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1919년 5월 만주의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 양성을 시작했다. 1920년 3월 왕청현에 있는 북로군정서 연성대장으로 활약했다. 1920년 10월 20일 보병 1개 대대를 인솔해 청산리 백운평에서 일제의 독립군 토벌부대를 공격해 큰 전과를 올렸다. 이 공격으로 일제는 수천 명의 사상자를 냈다.

  • ▲ 광복군 참모장 시절의 철기 이범석 장군
    ▲ 광복군 참모장 시절의 철기 이범석 장군

    1923년 5월에는 김규식, 고평 등과 함께 고려혁명군을 조직하였으며, 군사교육을 강화하며 독립운동의 기회를 기다렸다. 1934년에는 낙양군관학교 내 한국독립군 양성을 위한 특별반이 설립되자 총책임자 이청천의 명령으로 교육대장을 맡아 독립군 간부를 양성했다.

    1940년 9월 17일에는 한국광복군 참모장으로 임명되어 광복군 조직 확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1942년 4월에는 광복군 제2지대장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45년 8월 광복군 중장으로 귀국했다.

    1946년에 조선민족청년단을 창설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을 겸임했다. 1952년 자유당 부(副)당수 및 내무장관 등을 지냈다.

    1960년에는 충청남도에서 자유연맹(自由聯盟) 소속 참의원에 당선되는 등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며, 1972년 5월 11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하였다.

    오는 11일 추모식에는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 육·해·공군 장성, 기념사업회원, 광복회원, 유족 등 15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