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사업회 주관으로 10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 청산리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이범석 장군의 추모제가 열린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오는 10일 오전 11시 <철기 이범석 장군 41주기 추모제>를
    국립 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철기 이범석 장군 기념사업회(회장 황경섭)> 주관으로 연다고
    밝혔다.

    추모제에는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 육ㆍ해ㆍ공군 장성, 기념사업회원, 광복회원, 유족 등
    2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1900년 10월 20일 서울 용동에서 태어난 이범석 장군은 1915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이범석 장군은 이후 신규식의 주선으로 <운남강무당(雲南講武堂)>에 입학,
    기병과(騎兵科)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3․1운동 소식이 알려지자 독립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장교를 그만 두고
    <신흥무관학교> 고등군사반 교관으로 취임해 독립군 장교 양성을 시작했다.

    이범석 장군은 1920년 4월 중국 왕청현에 있던 <북로군정서>로 가서
    600명의 생도들을 독립군 장교로 교육시켰다.

    이범석 장군은 자신이 교육시킨 장교들과 함께
    1920년 10월 21일 보병 1개 대대를 인솔하고 청산리 백운평에서 일본군 주력부대를 강타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수천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범석 장군은 이후 김좌진 장군과 함께 <북로군정서>를 지휘하며
    일본군과 10여 차례 격전을 치르며 큰 승리를 거뒀다.

    이범석 장군은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참모장으로 임명되었고,
    이어 광복군의 주력이라는 제2지대장을 맡아,
    美전략정보국(OSS)과 합작해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했다.

    하지만 미국이 원자탄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하면서 전쟁이 끝났다.
    이범석 장군은 1946년 6월 3일 500여 명의 광복군과 함께 인천항을 통해 귀국했다.

    귀국 후 1946년 민족청년단을 결성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는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을 맡아 국군 창설과 국가기반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정부에서는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