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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당국이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 급습 작전과 당시 상황에 대해 공개하기 시작했지만, 상당 부분은 여전히 비밀의 장막에 가려져 있다.
또 당시 상황에 관해 엇갈린 설명이 나오기도 했다.
다음은 AFP 통신 등 외신과 텔레그래프 등 영국 신문들이 4일 정리한 여전히 남아 있는 의문점들이다.
▲빈 라덴의 은신처를 어떻게 찾아냈나?
-미 중앙정보국(CIA)은 빈 라덴의 신임을 받는 연락책이 빈 라덴의 최측근 그룹 내에서 특별한 지위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를 추적, 2010년 8월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은신처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하지만 미 당국은 이 연락책을 어떻게 찾아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정보당국이 은신처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을 도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익명의 아프간 정보당국 관리는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집은 아프간 정보당국이 처음 찾아낸 곳"이라며 찾아낸 시점은 8월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프간 정보당국이 현지 요원으로부터 "이 집 주변의 의심스러운 움직임"에 대해 보고받고 집을 감시한 결과 테러단체 고위 지도자가 살고 있다는 추론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미군 작전 목표는 빈 라덴 사살 또는 생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측근들은 특공대에 내려진 지시는 빈 라덴을 생포하거나 사살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하지만 작전에 대해 잘 아는 미국 관리들은 처음부터 빈 라덴이 작전 도중 살해될 것이라는 예상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고 전했다.
가령 빈 라덴이 손을 들고 백기를 흔들며 쏘지 말라고 애원하면서 비굴하게 항복하는 경우 생포한다는 것이다.
은퇴한 네이비 실 대원 등에 따르면 헬기 등을 이용한 공습 작전은 상대방에게 노출돼 반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사살'을 기본적인 전제로 깔고 이뤄진다고 말했다.
만일 빈 라덴을 생포하는 것이 작전 목표였다면 헬기 공습이 아닌 은밀한 지상 작전을 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빈 라덴이 저항했나?
-미국 정부는 빈 라덴이 살해당하기 전 저항했다고 말했다.처음에는 빈 라덴이 총을 갖고 있었지만 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 나왔다.
하지만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3일 "빈 라덴이 있던 방에서 빈 라덴의 부인이 특공대원에게 덤벼들려 했고, 다리에 총을 맞았지만 살해되지는 않았다. 이후 빈 라덴이 사살됐다. 그는 무기를 지니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
▲빈 라덴은 총을 몇 발 맞았나?
-미국 관리들은 빈 라덴이 몇 발의 총상을 어디에 입었는지에 대한 최종 보고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시신 사진을 본 한 관리는 그가 최소 1발의 총탄을 얼굴에 맞았다고 전했다.이런 작전에서 미 해군 특공대의 일반적인 전술은 가슴에 1발을 쏜 다음 머리에 1발을 쏘는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빈 라덴도 가슴과 머리에 총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빈 라덴이 여성을 인간방패로 이용했나?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담당 보좌관은 지난 2일 "은신처에는 가족이 있었고 여성 한 명이 있었다. 이 여성은 빈 라덴을 보호하는 방패로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말했다.하지만 카니 대변인은 빈 라덴이 여성을 인간방패로 삼았는지는 불확실하다며 빈 라덴의 부인이 다리에 총을 맞았지만 살해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특공대는 공습 당시 포로를 잡았나?
-영국 BBC방송은 파키스탄 정보 당국 관계자를 인용, 미국이 공습 도중 남성 1명을 생포했으며, 이는 빈 라덴의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하지만 몇몇 미국 관리들은 이것이 오보라고 잘라 말하면서 시신이든 생포한 포로든 특공대가 현장에서 가져온 것은 오사마 빈 라덴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 관리들은 현장에 있던 빈 라덴 가족은 파키스탄 당국의 손으로 넘어갔으며 이들이 어떻게 될지는 파키스탄 당국에 달렸다고 말했다.
▲빈 라덴의 죽은 아들은?
-처음에는 빈 라덴과 여성 1명, 2명의 알-카에다 연락책, 빈 라덴의 막내 아들 함자(20) 등 5명이 현장에서 죽은 것으로 보고됐다.그러나 백악관 브리핑에서 존 브레넌 대테러담당 보좌관은 죽은 사람은 칼리드(22)라는 이름의 다른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브레넌의 발언에 대한 공식 녹취록에는 칼리드의 이름이 함자의 이름으로 대체됐다.
브레넌 보좌관이 죽은 아들의 이름을 잘못 말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명확히 정리되지는 않았다.
▲은신처에는 몇명이나 있었나?
-당초 백악관은 소식통은 22명이 거주하고 있었고 이 가운데 5명이 숨졌다고 말했다.파키스탄 정보부(ISI)는 17~18명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뒤 파키스탄 정보부는 건물내에 성인 외에 17~18명의 어린이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어떤 설명이 맞는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은신처에 빈 라덴의 가족을 포함해 모두 3가족이 살고 있었다고 확인했다.
▲공습에서 파키스탄이 역할을 했나?
-빈 라덴 사망 발표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파키스탄의 협력이 빈 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내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하지만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에 이번 작전을 미리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리언 파네타 CIA 국장은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과의 공조는 작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판단해 이를 배제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군이 같은 은신처를 2003년에도 공습했었나?
-은신처 건물은 2005년에 빈 라덴을 숨기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된 것으로 미국 정부는 발표했다.그러나 파키스탄 정보부는 3일 똑같은 건물을 파키스탄 군이 2003년에 공습했던 적이 있다고 밝혔다.지금은 알-카에다의 3인자가 된 아부 파라즈 알-리비를 당시 파키스탄 당국이 검거하려고 해당 건물을 공습했었다는 파키스탄 정보부 소식통의 증언이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측의 설명이 맞다면 이는 미국과 파키스탄이 그동안 빈 라덴의 은신처 등에 대한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은신처 건물의 소유자를 놓고도 혼선이 일고 있다. 미국측은 2명의 연락책이 소유라고 밝혔으나 아프가니스탄측은 아프간인 소유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