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연구비 집행실태 논란, 집행내역 검증 시스템 허술현실과 동떨어진 관리규정, 연구비 유용 부채질현실에 맞는 규정 재정비 시급
  • 카이스트 교수의 자살로 대학 연구비 집행실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숨진 박 모 교수는 지난해 본인의 연구실에 지급된 1억원의 운영비 중 2,200만원을 유용했다는 혐의로 학교와 교과부로부터 강도높은 감사를 받고 이로 인해 심리적 압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오래된 관행이 천재 과학자를 죽음으로 내 몰았다는 자책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학계에선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더 이상 이런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연구비 집행실태를 재점검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대학 연구비 유용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연구비 집행실태에 대한 관리감독이 지나치게 허술하다는 점이다.

    교과부와 한국과학재단 등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전국 4년제 대학에 지원한 연구비는 모두 4조1천억원이 넘었으며 교수 1인당 평균 연구비는 6,200여만원에 달했다. 서울 및 수도권 대학과 지방 거점 국립대 등 주요대학 교수는 연간 2~3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그러나 연구비 집행내역에 대한 관리감독은 생각 밖으로 허술하다. 물론 해당 프로젝트가 끝나면 연구책임자는 한국과학재단에 연구비 집행내역을 보고하도록 돼 있다. 사업 유형에 따라서는 대학 산학협력단에 보고하기도 한다. 문제는 집행내역을 보고한다고 해서 세부내용을 일일이 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실험장비 구입비용을 실제와 달리 높게 책정하거나 심지어 구입하지도 않은 물품을 구입한 것처럼 명세서를 허위로 조작하는 일도 발생한다. 특히 인건비는 연구비 유용 사건이 터질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그만큼 유용이 쉽다는 반증이다.

    실제 연구실 조교 명단에 본인의 배우자나 친족을 넣어 인건비를 빼돌리는 경우도 있다. 연구원이나 조교 등에게 정상적으로 인건비를 지급해도 통장을 연구책임자가 관리하면서 개인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연구비 집행의 적정성을 순전히 교수 개인의 양심에 맞기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는 현실과 동떨어진 관리감독 규정이다.

    학계에서는 교수가 개인용도로 연구비를 유용하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연구비를 착복한 것으로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연구재단과 일선 대학 연구실 관계자들에 의하면 연구비를 처음 제출한 계획서와 다르게 지출하면 유용혐의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특히 이번 카이스트 교수 자살사건에서와 같이 인건비가 논란의 초점이다. 각 대학연구실은 오래전부터 인건비를 연구책임자가 거둬 관리하는 관행이 존재한다. 규정에 따라 연구원 개인의 계좌로 인건비를 송금하지만 책임자가 통장을 모아 관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성된 인건비는 대부분 연구실 운영비나 식사비 등으로 사용된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연구실 관계자는 “연구실 운영을 위해서는 들어가는 비용이 한두가지가 아니다”면서 “인건비가 없으면 연구실 운영경비를 만들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처음 제출한 계획서와 다르게 연구환경이나 여건이 바뀌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지만 이런 현실을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 이런 관행이 자리잡게 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번 박 교수의 자살을 바라보는 대학 연구실의 반응은 착잡하다. 실제 인건비를 개인적으로 쓰지 않았어도 규정과 다르게 연구실 운영에 사용했다면 그 자체가 유용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일부 연구실에서는 교수가 인건비를 개인적으로 쓰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박 모 교수의)자살사건도 알고 보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교수는 “잘못된 관행이라는 걸 알지만 대부분 별 죄의식 없이 그렇게 한다”면서 “실제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이번 사건처럼 감사에서 걸리면 사실여부를 떠나 추잡한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