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서 거행中·日서 온 추모행사 참가자들과 국제교류 행사도
  • ‘천안함 46용사 1주기 추모식’이 열리는 시간, 서울 남산에서도 또 한 명의 애국자를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안중근의사 숭모회(이사장 안응모)는 25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했던 ‘안중근 의사 순국 101주기 추념식’이 26일 오전 10시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추념식에는 우무석 국가보훈처 차장, 남만우 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해 독립운동관련 단체장․광복회원․시민․유족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동성 안중근의사기념관장의 ‘안중근 의사 약전’ 봉독(奉讀)과 학생대표 이혜민(이화외고 3학년) 학생의 ‘최후의 유언’ 봉독, 숭모회 이사장 추념식사, 국가보훈처 차장 및 광복회 부회장의 추념사, 김후란 시인의 헌시봉독, 역사음악어린이합창단의 추모가 합창,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오후 6시부터는 장충동 서울클럽 한라산룸에서 숭모회와 중국․일본측 행사 참가자가 모여 안의사의 애국정신 및 평화사상 선양을 위한 국제친선 교류행사를 갖는다.

    안중근(安重根) 의사(1878~1910)는 황해도 신천에서 출생했다. 1905년 평안도 진남포에서 삼흥(三興)․돈의(敦義)학교를 설립해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해외로 나가 의병을 일으키고, 1908년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하여 경흥․회령 등지에서 국내진공작전을 주도, 대일항전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 후 블라디보스톡․연추(煙秋)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을 만나 구국의 길을 강구하고 1909년 봄에는 김기열․백낙길․우덕순 등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동맹을 결성, 일사보국을 맹세했다. 같은 해 9월 일제의 거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거사를 계획,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저격, 사살한 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909년 11월 러시아 헌병대에서 여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됐다.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3월 26일 순국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현재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1962년 안중근 의사의 공훈를 기리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