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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의 후임으로 조 도노반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부차관보가 유력히 거론되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전해지자 국내 외교가의 반응이 미묘하다.
G20(주요 20개국) 이후 높아진 한국의 국격과 '사상 최고'로 평가되는 한·미동맹을 고려할 때 이제는 주한 미국대사의 '격(格)'을 한 단계 높일 시점이 된 것 아니냐는 시각에서다.
도노반 수석 부차관보는 미 국무부 직제상 'deputy assistant secretary'로 우리 정부부처의 국장에 해당한다. 주요 현안을 논의할 때 우리측의 카운터파트는 주로 외교통상부 김형진 북미국장과 김홍균 평화외교기획단장이다.
미 국무부는 장관(secretary) 아래 deputy secretary(부장관), undersecretary(차관), assistant secretary(차관보), deputy assistant secretary(부차관보)의 직제로 편성돼있다.
'세계 외교의 사령탑'으로 불리는 미 국무부의 위상을 감안할 때 부차관보라고 하더라도 본래의 직급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격' 자체가 중요시되는 대사임명 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해보면 어떤 직급의 인물을 보내느냐에 따라 정치적 의미가 달라지고 외교관계에도 영향을 준다는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국무총리를 지낸 한덕수씨를 주미대사로 보낸 점을 상기시키며 "우리만 너무 신경쓰고 있는게 아니냐"는 소리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 당국자들은 과거의 전례와 미 국무부의 인사관행을 감안할 때 수석 부차관보급의 주한 미국대사 기용은 결코 무리하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장 한국민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주며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는 스티븐스 대사는 도노반 수석 부차관보의 바로 전임이다. 또 지난 2001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 역시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였고 2004년 임명된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는 이듬해 4월 국무부 차관보로 승진했다. 힐 대사에 이어 2005년 부임한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만이 차관급에 해당하는 주 러시아 대사를 지냈다.
외교 당국자는 7일 "그동안 주한 미국대사는 직업외교관과 관료출신, 학자 등이 주로 기용돼왔다"며 "이중 직업외교관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는 수석 부차관보이며 차관보부터는 정무직이어서 이를 두고 격을 문제삼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특히 "직급 자체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또 얼마나 열의를 갖고 임무에 임하는지를 봐야 한다"며 "특히 도노반 수석부차관보의 경우 1990년대 한국에서 근무하며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최근 한반도 상황의 엄중성과 한.미동맹 관계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주한 미국대사에 '힘있는' 정무직 인사(Political Appointee)가 기용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전형적 직업외교관 출신들이 실무적 능력을 발휘하며 복잡한 양자현안들을 순조롭게 해결한다는 평이지만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미 양국이 수뇌부 차원에서 긴밀한 호흡을 맞추려면 '정무형 대사'의 필요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