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자 ⑨  

     웨스트만을 만난 다음날 오전 내가 묵고 있던 싸구려 호텔로 시드니 목사가 찾아왔다.
    시드니는 60대 후반으로 내가 프린스턴대에 다닐 때 근처 교회의 담임 목사를 지냈다가 작년에 워싱턴으로 옮겨왔다.

    생활비가 항상 부족한 나에게 교회에서 강연을 시키고는 5달러도 내 놓고 10달러도 내 놓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강연을 듣고 교인들이 낸 기부금이 아니었다. 시드니 목사가 교인 성금에서 떼어준 것이다.

    그것을 알고 나서 나는 발을 끊었다가 시드니 목사한테 꾸지람을 받았다. 교회 안에서 나가는 돈은 모두 주님 대신인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그 시드니 목사가 갑자기 찾아온 바람에 나는 당황했다.

    「교인한테서 자네가 이곳에 묵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
    침대 옆 의자에 앉은 시드니가 편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백발에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에다 허리까지 굽었지만 눈이 맑다.

    시트를 겨우 펴서 정돈한 내가 침대 끝에 앉았을 때 시드니가 말했다.
    「감리교총회를 끝내고 자네가 집 잃은 강아지처럼 미국 전역을 헤매고 다닌다는 소문이 났네.」

    웃지도 않고 말하는 분위기가 오히려 편했으므로 나는 심호흡을 했다. 맞는 말이다. 아마 목사들 사이에서 퍼진 소문일 것이다. 교회가 수천개여서 이런 소문은 금방 퍼진다.

    그때 시드니가 불쑥 물었다.
    「리, 총 쏠 줄 아는가?」

    머리를 든 나는 시드니가 손을 권총처럼 만들어 나를 겨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여전히 정색하고 있다.

    내가 머리를 저었다.
    「모릅니다. 목사님.」
    「그럼 조직을 만들어 보았는가?」
    「무슨 조직 말씀입니까?」
    「교인 조직이나 독립군 조직.」

    시드니의 말뜻을 알아차린 내가 다시 머리를 저었다. 그러자 시드니가 길게 숨을 뱉는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각각의 유용한 용도를 주셨네. 리.」
    내 시선을 받은 시드니가 말을 이었다.
    「리, 그대의 용도는 무엇이겠나?」

    눈만 껌벅이는 나에게 시드니는 두 팔을 벌려 보였다. 설교에 열중했을 때의 몸짓이다.

    「그대를 필요로 한 곳이 틀림없이 있을걸세. 그 곳을 찾아보고 있는가?」
    「......」
    「내 욕심만 뒤쫓지 말고 나를 유용하게 희생시킬 장소를 찾아본 적이 있나?」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느낌을 받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때 시드니가 부드럽게 말을 잇는다.
    「그런 곳이 얼마든지 있을 것일세. 리. 그 곳에 가서 기다리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이네.」
    「감사합니다. 목사님.」

    내가 겨우 그렇게 말했을 때 시드니가 주머니에서 신문지에 싼 뭉치를 앞쪽 탁자에 놓았다.
    「내 재미없는 설교를 들어준 값일세.」
    「고맙습니다. 목사님.」

    시드니는 언제나 헌 신문지에 기부금을 싸 주었다. 동전까지 들어있어서 무겁지만 많아야 10불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시드니가 내 어깨를 손으로 쥐더니 기도했다.
    「하나님, 이 외롭고 불쌍한 양에게 길을 인도해 주소서. 이 양이 제 백성들을 도와줄 길을 찾아 주소서.」

    빠르고 굵은 기도는 금방 끝났으나 나는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서 울리는 것 같다.
    몸을 굳히고만 서있는 나를 두고 시드니가 돌아섰다. 
    나는 시드니 등에 대고 인사를 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