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⑲  

     「선생님.」
    숙소인 YMCA 사옥으로 돌아왔을 때는 밤 12시가 넘어 있었다. 방으로 들어서려던 나는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서순영이다. 복도의 등빛에 비친 서순영의 얼굴은 하얗게 굳어져 있다.

    불안한 예감이 든 내가 잠자코 서순영을 보았다. 일년 가깝게 사무실 안에서 겪다보니 서순영의 성격을 안다. 감성(感性)이 풍부한데다 자존심이 강해서 쉽게 상처를 받는다.

    질레트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느냐고 물었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화가 난 서순영이 닷새 동안이나 말 한마디 안했기 때문이다.

    다가선 서순영이 입을 열었다.
    「고종덕씨가 자살을 했다는 전보가 왔습니다.」

    놀란 내가 숨을 죽였고 서순영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학당에 출근하지 않았는데 오후에 집 창고에서 목을 맨 시체로 발견 되었다네요. 한시간 쯤 전에 최대진 선생한테서 전보가 왔습니다.」
    「......」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깨를 늘어뜨린 내가 길게 숨을 뱉았다.
    갑자기 가슴이 무거워지더니 목이 메었으므로 나는 어금니를 물었다. 고종덕에 대한 죄책감에다 현실의 압박감이 겹겹이 몸을 누르고 있다.

    그때 서순영이 불쑥 묻는다.
    「선생님, 방 안으로 들어가도 됩니까?」

    머리를 끄덕인 내가 무심결에 방문을 열었다가 퍼뜩 서순영을 보았다. 서순영은 그냥 내 옆을 스치고 먼저 방 안으로 들어선다.

    내가 방문을 닫고 나서 서순영의 옆모습을 향하고 물었다.
    「할 말이 남았는가?」
    「저는 경성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머리를 돌린 서순영이 똑바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말을 잇는다.
    「이곳에서 간도 땅으로 들어가 독립군과 합류하겠습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서순영의 기질이면 너끈히 한사람 몫의 독립군 역할을 해낼 것이다. 고종덕의 자살이 결심을 하게 만들었겠지만 오래 전부터 계획은 세웠을 것이었다.

    그때 서순영이 벽에 걸린 석유등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선생님,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가겠습니다.」
    「이것 봐, 서순영씨.」

    당황한 내가 불렀을 때 방안의 불이 꺼졌다. 불이 꺼진 것이 마치 입을 막은 것처럼 방안에는 정적이 덮여졌다. 잠깐동안 우두커니 서있던 내가 옷을 벗고 침대에 올랐을 때 곧 서순영도 내 옆으로 다가와 눕는다.

    마침내 내가 긴 숨을 뱉고 나서 말했다.
    「마치 작별의 행사 같구나.」
    「그렇습니다.」
    바로 대답한 서순영의 목소리는 내용처럼 매말라 있다.

    서순영이 말을 잇는다.
    「저 북쪽, 만주 땅에서 싸우다 죽겠습니다. 이렇게 살기는 싫습니다.」
    「함부로 목숨을 버리면 안돼. 참고 견디어야 될 때도 있는거야.」
    「그런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더니 서순영이 몸을 붙여왔으므로 나는 긴장했다. 서순영이 두 팔로 내 허리를 감아 안는다. 가슴에 닿는 숨결이 뜨거웠다.

    「제 아버지는 평양 헌병대의 보조원입니다. 친일파이고 조선인의 배신자이기도 하죠.」
    서순영이 내 바지를 벗겨 내리면서 말을 잇는다. 긴장한 나는 가만있었다. 서순영의 부친은 농민인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바지를 벗긴 서순영이 이제는 제 옷을 벗으면서 말했다. 이제는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부녀가 같이 조선 땅에서 살기는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