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칸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그들을 만났다. 시간이 지나서 일까. 서울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우승의 기쁨은 날려버리고 가뿐히 일상으로 돌아온 ‘프로’였다.

    제 57회 칸 국제광고제(Cannes Lions 2010) 영라이언스 필름 경쟁부문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1위에 오른 제일기획의 아트디렉터 김진형(30), 카피라이터 이성하(28)씨.

    우승 기쁨도 ‘잠시’..공항에서 회사로 ‘직행’

  • ▲ 제일기획의 아트디렉터 김진형씨. 칸 우승 기념으로 후배가 자리를 장식해줬다고. ⓒ 뉴데일리
    ▲ 제일기획의 아트디렉터 김진형씨. 칸 우승 기념으로 후배가 자리를 장식해줬다고. ⓒ 뉴데일리

    이들의 수상소식에 금의환향을 꿈꿨을 법도 한데 실상은 달랐다. 이성하씨는 “월요일날 공항에 내리자마자 회사로 달려갔다”면서 “일주일 자리를 비우는 동안 일이 잔뜩 밀려있었다”고 전했다.

    김진형씨의 경우는 조금 나았다. 휴가로 며칠 더 머물다 왔기 때문에 조용히 출근한 그의 자리에는 후배의 깜짝 선물이 준비돼 있었다고. “무당집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장식이 자리에 걸려있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출근하는 날에 맞춰 아침 일찍 나와 준비했다더라.”

    두 사람이 우승한 영라이언스 경쟁부문은 만 28세(우리나라의 경우 만30세) 미만의 젊은 광고인들이 펼치는 국가별 크리에이티브 경연대회로 필름, 프린트, 미디어, 사이버 등 4분야로 나뉜다.

    주제는 현장에서 발표되며 작업시간으로 이틀이 주어지나 오전 9시부터 저녁 8시까지로 시간의 제약이 따른다.

    “주제 우리에게만 어려운 것 아냐”..따뜻한 메시지로 승부수

    이번 필름 경쟁부문은 노키아 휴대전화를 사용해 세계동물협회가 고심하고 있는 동물학대 관광을 막을 수 있는 60초 짜리 모바일 광고필름을 만드는 것이 과제였다.

    김진형씨는 “사실 주제를 받고 가이드라인이 너무 많아 놀랐다”면서 혐오스럽거나, 여행자가 죄책감을 들게 해서는 안된다는 등 제약이 너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성하씨도 “영라이언스는 실험적인 시도가 주목을 받는데 제약 때문에 아이디어들을 다 가려내야 했다”고 전했다.

    이때 주제가 어려운 만큼 말이 되면 상도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두 사람에 머리에 스쳤다. 이들은 따뜻한 메시지로 승부수를 걸었다.

    “여행의 추억은 동물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여행상품에 포함돼 있어서 코끼리를 타고, 호랑이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김진형씨는 말을 이었다.

    여행은 사진으로 기록된다는데 착안, 사진에 작은 변화를 주기로 했다. 비주얼적으로 비슷한 사진, 위트 있는 모습들을 재치 있게 표현해 낸 것. 상아 뿔을 양 손에 들고 있던 남성의 손에는 커다란 수박이 들려있고, 코끼리를 타던 사람들의 모습은 버스 위에 오른 사람들의 모습으로 바뀌는 등 이렇게 총 7커트가 완성됐다.

  • ▲ 칸 국제광고제 영라이언스 필름 경쟁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제일기획의 아트디렉터 김진형 프로와 카피라이터 이성하 프로. ⓒ 뉴데일리
    ▲ 칸 국제광고제 영라이언스 필름 경쟁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제일기획의 아트디렉터 김진형 프로와 카피라이터 이성하 프로. ⓒ 뉴데일리

    느림의 미학? “4X6 사진 뽑는데 일주일 걸려”

    아이디어는 빨리 나왔지만 현지사정이 두 사람을 편히 놔두지 않았다. 

    이성하씨는 “현지에 가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왔는데 프린트부터 제대로 갖춰진 게 하나도 없었다. 합성으로 완성된 사진을 출력해야 하는데 칸 시내를 다 뒤져 찾아낸 사진관에서 4X6 이상의 사진을 뽑으려면 일주일이 걸린다더라”며 혀끝을 내둘렀다.

    결국 제일기획의 세미나 부스에서 프린트기기를 빌리고 또 현지에서 만난 한국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우여곡절 끝에 14장의 사진 출력, 촬영까지 마칠 수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 영라이언스 필름부문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자리에 붙어있을 수 없었던 김진형씨는 문틈으로 심사위원들이 ‘대한민국’에 몰려있는 것을 보고 이성하씨에게 달려가 안겼다. 수상을 예감한 것.

    이성하씨는 “3등부터 발표를 하는데, 캐나다, 푸에르토 리코가 연달아 불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이름이 불릴 때 정말 가슴이 뜨거워졌다”면서 “장비나 여러 악조건이 많아 매일 뛰어다니면서도 일이 뒤틀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던 게 우승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년에도 ‘칸’으로 가는 두 사람

    사실 두 사람은 제작팀만 100명에 달한다는 국내 대형 광고회사답게 함께 손발을 맞춰 본 것은 처음이다. 칸으로 가기 전 두 차례 만나 이전 수상작들을 살펴본 것이 ‘스터디’의 전부일 정도다.

    김진형씨는 “수십 장의 사진을 펼쳐놓고 배경부터 시작해 팔, 다리, 얼굴 등 이미지를 만들고 있을 동안 성하가 광고카피에 음악까지 모두 뽑아놨더라. 완벽한 파트너였다”고 치켜세웠다. 이에 질세라 이성하씨도 “총 14컷의 사진 작업을 단 몇 시간 만에 해낼 사람은 이분 뿐”이라고 전했다.

    내년 6월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프랑스 칸으로 떠난다. 영라이언스 경쟁부문에서 우승한 팀에게는 다음 해 수백만원에 달하는 칸광고제 참관비와 항공권이 부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40여 개국 참가자들과 경쟁하느라 '칸'을 모른다는 두 사람이 내년에는 여유롭게 '칸'을 즐기기를 바란다.

  • ▲ 칸의 영광은 뒤로한채 업무로 복귀한 이성하 프로와 김진형 프로 ⓒ 뉴데일리
    ▲ 칸의 영광은 뒤로한채 업무로 복귀한 이성하 프로와 김진형 프로 ⓒ 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