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포화 속으로’를 더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좋겠다
     
     영화 ‘포화 속으로’를 보았다. 보고 난 소감이 좋다. 영화에 군더더기가 없다. 그러면서 영화가 전해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보는 이에 따라서 다를지는 몰라도 필자에게 전해지는 그 메시지는 아주 명료했다. 그것은 “전쟁은 우리가 일으키지 않고 또 우리가 도발하지 않아도, 그리고 우리가 전쟁으로부터 도피하려 해도,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날 수 있고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전쟁에 참가하여 열심히 싸워서 승리함으로써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난 6월2일 실시된 지방선거 때 상당수의 청소년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이 이기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난데없는 선동에 현혹되어 심지어는 군에 복무하는 젊은 사병들이 그들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러 “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일까지 있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 같은 이 나라 젊은이들의 생각은, 과연 그들이 그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터무니없이 현실과 괴리된 자포자기적인 패배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것이냐의 여부는 대한민국에서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거나 야당이 승리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영화 “포화 속으로”는, 영화에 등장하는 북한군 대대장의 입을 빌어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과대망상적인 정신착란증 환자임이 분명한 북한의 ‘위대한 수령’이 북한군에게 “아무 날까지 부산으로 진격하여 남한을 해방시키라”고 명령하기만 하면 어는 순간에든지 일어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려내고 있다.
     
     이 같은 경우에 이 나라 젊은이들이 생각해야 할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은 간단명료하다. 그 같은 침략이 있을 경우 저항을 포기하고 굴복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력(死力)을 다하여 저항함으로써 우리가 이룩해 놓은 가치들을 수호할 것인가의 양자택일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양자택일을 함에 있어서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반드시 생각해야 할 명제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저항을 포기하고 굴복을 택할 경우 그들이 각오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즉, 오늘날 세계에서 웅비하는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그들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모든 기본권리를 박탈당하고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어 있는 실패한 국가인 북한 땅의 2천3백만 동포들이 겪고 있는 질곡의 생활을 감수해야 하리라는 것이다.
     
     인터넷 웹사이트에 이 영화를 지목하여 ‘반공’ 교재라고 비판하는 글들이 뜨고 있다. 아마도 북한군 대대장의 매우 절제된 대사 가운데 북한의 ‘위대한 수령’의 몇 마디 ‘어록(語錄)’을 등장시켜 희화화(戱畵化)한 것을 이유로 시비하는 것일 듯 하다. 그러나, 도대체 이 같은 영화를 통하여 그나마도 그 정도의 절제된 내용으로 표현되는 ‘반공’의 메시지가 어째서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를 필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영화 ‘포화 속으로’는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인류역사를 통하여 등장했던 가장 사악(邪惡)한 이념인 ‘공산주의’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반공’ 교육의 필요성을 각인(刻印)시켜주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데 의미가 부여되어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념적으로 좀 더 보수에 편향된 어떤 이들은 영화 ‘포화 속으로’를 가지고도 “아직 부족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 정도로도 대견스럽다”는 생각이다. 가급적 많은 ‘학부모’들이 아예 그들의 자녀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보든지 아니면 먼저 보고 자녀들에게 관람을 권유하든지 하는 방법으로 보다 많은 이 나라 청소년들이 이 영화를 관람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