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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이 듣기로는 하주연의 아버지는 강남에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임대업자로 재산이 수백억대라는 것이다. 돈이 많다는 것은 죄가 아니고 부끄러워 할 일도 절대 아니다.
전에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선입견이 생겼지만 지금은 돈이 많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인간이 있다면 그 분이야 말로 정신병원에 가셔야만 한다.
어쨌거나 하주연은 예쁘겠다, 몸매 잘 빠졌겠다, 머리 좋겠다, 돈 많겠다, 최고의 조건을 갖춘 여자임은 틀림없다.
오후 3시경에 속초 대포항 근처의 콘도에 도착한 일행 셋의 분위기는 밝다. 윤지선도 두 번에 한번 꼴로 말대답을 하면서 웃기도 했는데 슬슬 말까지 내릴 기색이다.
「내가 아래층에서 시장 보고 올테니까 너희들은 씻기나 해.」
콘도는 방 세 개짜리에다 거실에 주방까지 갖춰졌으며 베란다에서는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하주연이 예약을 했고 방값까지 냈기 때문에 김민성은 식품이라도 제 돈으로 살 작정이었다.「형, 같이 가요.」
김민성을 따라 나오면서 윤지선이 말했다.그러자 하주연이 흥흥 웃는다.
「둘이 잘 해봐. 방 빈데 많더라.」
「저게.」눈을 치켜 떠 보인 김민성이 윤지선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으면서 말했다.
「난 저게 무슨 꿍꿍이 속인지 지금도 마음이 안놓인다.」엘리베이터 안에는 둘 뿐이었으므로 김민성이 버튼을 누르면서 거침없이 말을 잇는다.
「날 찍어서 이곳에 데려온 이유 말야. 나한테 관심이 있어서 그랬다면 지나던 개가 웃을 테고.」
「형은 그렇게 자신이 없어요?」불쑥 윤지선이 묻자 김민성은 쓴웃음을 짓는다.
「내 자신을 잘 알 뿐이지. 내가 여러 번 험한 꼴을 당했거든.」그때 윤지선이 시선을 주었으므로 김민성은 머리를 저었다.
「박재희를 연관시키진 마. 걘 예외야.」
「나두 영문을 모르겠어요, 형. 갑자기 주연이가 여행을 떠나자고 했거든요.」지하 1층의 수퍼마켓으로 내려 온 둘은 장바구니를 집어 들고 나란히 걷는다.
윤지선이 말을 이었다.「내가 형한테 관심이 있다고 한 말은 빈말이 아니죠. 주연이한테 형 이야기를 자주 했으니까.」
「황송하군.」
「부담갖지 마요.」
「이미 부담 먹었어.」쌀과 마늘, 콩나물, 고추장, 참치 캔까지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김민성이 입맛을 다셨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즐겨요, 형.」장바구니에 상추에다 깻잎, 대파를 담으면서 윤지선이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형한테는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너희들이 무슨 음모를 꾸미는 건 아니겠지? 일테면,」힐끗 윤지선에게 시선을 준 김민성이 말을 잇는다.
「나한테 술을 잔뜩 먹인 다음에 옷을 벗기고 몹쓸 짓을 한다든가 말야.」그러자 윤지선이 이만 드러내고 소리 없이 웃는다.
그 모습을 본 김민성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여자 모습은 마치 카멜레온 같다. 똑같은 생김새인데도 수시로 색깔이 변하는 것이다.
지금 윤지선의 모습은 섹시하다. 전혀 다른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