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안 된 탓일까? 오랜 시간 그를 괴롭혀온 게실염은 때론 갑자기 열이 오르기도 하고 때론 오한이 찾아오기도 했다.
    힘겨운 발걸음이지만 그는 이곳을 찾아야 했다. 25년을 이어온 만남, 어떤 아픔도 그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포레스트 론 공동묘지. 그는 한 묘지 앞에서 다정한 손길로 비석을 쓰다듬었다.
    “한 달만이지. 외롭지 않았소? 당신에게 기쁜 소식이 있소,”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묘비에 귀엣말처럼 속삭였다.
    “기쁜 소식이란 우리가 곧 만날 수 있다는 것이요. 곧 당신에게 갈 수 있을 것 같소.”
    묘비에 키스를 하고 그는 일어섰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문으로 걸어 나오는데 매달 그를 보아온 묘지 관리인이 인사를 건넸다.
    “감독님, 오늘이 21일이군요.”
    “그렇지. 수고하게.”

    미국 대학농구의 '전설' 존 우든(John Wooden) 감독. 그의 아내 넬리는 지난 1985년 3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넬리가 그를 떠난 25년 세월, 존 우든 감독은 매달 넬리와 작별한 21일엔 아내의 묘지를 찾았다. 단 한 번의 빠짐도 없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에게 보내는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써내려갔다.
    "사랑하는 넬리, 정말 보고 싶소. 이승에서의 삶이 빨리 끝나야 당신을 만날 수 있을 텐데... 당신이 없는 내 삶이 이렇게 오래 이어진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소.“
    “오랜 기다림에 혹시 내 모습 잊혀지는 것은 아닌지. 이제 나도 아흔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되었소. 우리가 다시 만날 때 당신이 나를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닌지...”
    존 우든의 편지 마지막은 한결같이 “사랑하오, 넬리."로 끝나곤 했다.
    25년을 이어온 이 ‘부칠 수 없는 편지’는 노란색 리본이 달린 박스 속에 수북히 쌓여졌다.

    편지만이 아니었다. 아내가 떠난 후에도 존 우든의 삶은 아내와 함께였던 그대로였다.
    넬리의 베개와 덮고 자던 이불도 그리고 침대도 그대로 두었다.
    아내가 누워 자던 쪽은 절대 '침범'하지 않았다. 곤히 잠든 아내를 깨우기 싫어서였다.
    존 우든은 그렇게 아내의 체취를 느끼며 25년을 살았다.
    그리고 지난 4일 밤 존 우든은 100세 생일을 넉 달 앞두고 눈을 감았다. 임종을 지켜본 사람들은 우든의 마지막 모습은 한없이 편안했다고 한다. 잔잔한 미소까지 띄고 있었다고 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망부석처럼 보낸 25년 세월. 그는 ‘이제 더 아프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그리던 아내와 만나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넬리, 내가 너무 늦지 않았소?”

    미국의 언론들은 존 우든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일제히 "우든은 오랜 소망을 이뤘다. 그는 끝내 그리던 아내 넬리에게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존 우든은 누구?
    미국 대학농구 역대 최고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前 UCLA감독.
    ‘현대농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우든은 1946년 인디애나주립대에서 감독생활을 시작해 1948년 UCLA에 부임했다. 이후 무려 10차례나 대학농구 정상(역대 1위)을 밟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는 67년부터 7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작성했다. 29년의 지도자 생활 중 통산 664승, 162패 승률 80.4%의 대기록을 남겨 1961년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06년 대학농구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우든은 현대농구의 기초가 되는 수많은 전술을 창시한 ‘감독들의 아버지’로 꼽힌다. 빌 월튼, 카림 압둘자바 등 그가 직접 지도한 슈퍼스타들은 이루 헤아리기도 어렵다. 매년 대학농구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존 우든 어워드’를 통해 지금도 지속적으로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다.
    우든은 당장의 성적보다 대학선수다운 성적과 인성을 강조했다. 실력 좋은 선수를 라이벌 팀에 빼앗기더라도 명문 UCLA에 어울리는 좋은 성적을 갖지 못한 선수는 과감하게 선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