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때늦은 꽃샘추위가 급습한 서울 목동야구장은 열성 야구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음에도 황량함마저 느끼게 한다. 14일 오후 5시 20분, 경기가 시작하려면 한 시간도 더 남은 시간이지만 야구 매니아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만의 '지정석'에 앉아 친구들과 경기 결과를 예측하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날씨 탓인지 관중 숫자들의 숫자는 적었지만 경기 시간이 임박해 올수록 긴장감은 점차 고조되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 들어 '7연패의 늪'에 허덕이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 선수들의 얼굴엔 '오늘만큼은 반드시 이기리라'는 결의감마저 엿보였다.

  • ▲ 넥센 히어로즈의 응원단이 관중들과 함께 신나는 응원을 펼치고 있다(가운데 분홍색 상의가 김민주 양). ⓒ 김상엽 기자 
    ▲ 넥센 히어로즈의 응원단이 관중들과 함께 신나는 응원을 펼치고 있다(가운데 분홍색 상의가 김민주 양). ⓒ 김상엽 기자 

    이날 넥센과 맞붙게 될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석에도 관중들이 속속 들어차기 시작했다. 평소 열성팬이 많기로 유명한 구단 답게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 홈팀을 무색케 할 정도로 많은 숫자의 관중들이 들어와 눈길을 끌었다. 결과적으로 이날 경기를 히어로즈가 이김에 따라 롯데와 넥센은 5승 9패로 동률을 이뤄 공동 5위에 랭크됐다. 역전패를 당한 롯데 입장에선 분루를 삼켜야 했던 경기였지만 코너에 몰렸던 넥센은 이날 경기를 계기로 상위권 진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 ▲ 김민주 양이 멋진 '하이킥 시구'를 선보이고 있다.  ⓒ 김상엽 기자 
    ▲ 김민주 양이 멋진 '하이킥 시구'를 선보이고 있다.  ⓒ 김상엽 기자 

    6시 10분, 넥센 히어로즈의 마스코트 '턱돌이'와 함께 국내 최연소 치어리더로 유명한 김민주 양이 시구를 위해 덕아웃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참고로 히어로즈 마스코트의 공식적인 이름은 '히어로'지만, 턱돌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깜찍한 민주 양의 등장에 현장에 있던 카메라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터지기 시작했다. 턱돌이의 꼼꼼한 지도로 간단한 타격 연습과 투구 동작을 익힌 민주 양은 대기하고 있던 포수를 향해 힘차게 공을 뿌리기 시작했다. 제법 먼거리에서 던졌는데도 민주 양의 공이 포수에게 잘 전달됐다. 초보치고는 제법 괜찮은 솜씨다. 자신의 실력(?)에 고무된 듯 민주 양도 연신 방긋거리며 즐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28분 민주 양의 시구 차례가 오자 턱돌이와 함께 마운드에 등장한 민주 양이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전혀 떨리거나 긴장감도 없는 눈치다. 풍차돌리듯 방망이를 휘두르는 '타자' 턱돌이의 방해에도 민주 양의 손을 떠난 공은 보기좋게 포수의 미트에 꽂혔다.

    성공적으로 시구를 마친 민주가 마운드를 내려가자 드디어 경기가 시작됐다. 기선제압은 롯데가 했다. 1회초부터 톱타자 김주찬의 우전 안타와 2번 손아섭의 2루타로 맞이한 무사 2,3루 찬스에서 홍성흔과 이대호가 연속 우익수 희생플라이를 때려내며 2점을 선취 득점했다.

    3회초에도 롯데는 1사 이후 손아섭이 안타를 치고 홍성흔이 2루타를 치고 나가 1사 2,3루의 찬스가 이어졌다. 아쉬운 점은 히어로즈의 좌익수 덕 클락이 슬라이딩 캐치를 시도했으나 홍성흔의 타구를 잡지 못한 점이다. 만일 클락이 홍성흔의 공을 제대로 잡았다면 이날 경기 양상은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결국 롯데는 후속 타자로 등장한 이대호가 1타점 적시타를 터뜨렸고 카림 가르시아가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기록해 점수차를 벌렸다.

  • ▲ 넥센 히어로즈의 응원단.  ⓒ 김상엽 기자
    ▲ 넥센 히어로즈의 응원단.  ⓒ 김상엽 기자

    그러나 패배 분위기가 역력했던 5회초까지도 넥센 히어로즈의 관중석에선 홈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응원이 끊이지 않았다. 관중들의 숫자도 원정팀보다 적었지만 "날려버려", "화이팅!"을 외치는 목소리 만큼은 롯데 팬들을 압도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민주 양을 포함, 5명의 치어리더들은 넥센 선수들의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도 환호성을 지르며 더욱 신명나는 응원전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 ▲ 김민주(우측) 양이 신명나는 응원전을 펼치는 모습.  ⓒ 김상엽 기자 
    ▲ 김민주(우측) 양이 신명나는 응원전을 펼치는 모습.  ⓒ 김상엽 기자 

    이들의 열정적인 응원 덕분인지 기회는 5회말에 찾아왔다. 롯데 선발 라이언 사도스키가 갑자기 컨트롤 난조를 보이며 볼넷을 남발, 위기 상황을 자초한 것. 손쉽게 무사 2,3루의 찬스를 잡은 넥센은 클락의 희생플라이와 강정호와 이숭용의 연속 볼넷을 엮어 만루 기회를 맞게 됐다. 이후 밀어내기 볼넷과 송지만의 우전 적시타로 2점을 추가한 넥센은 롯데를 한점차로 바짝 추격했다.

    운명의 8회말. 넥센은 장기영이 우중간을 가르는 3루타를 작렬시키고 김민우가 좌월 적시 2루타를 터뜨려 5-5 동점을 이뤘다. 이후 클락의 볼넷과 강정호의 우전 적시타로 넥센은 경기를 6-5로 뒤집는 묘미를 선보였다.

    이날 짜릿한 역전승을 기록한 넥센은 7연패 탈출과 함께 목동 홈구장 5연패에서 벗어났다. 특히 이날 경기는 목동 홈구장에서 올 시즌 첫 승리를 기록한 경기로 기록돼 의미를 더했다.

    추위가 엄습한 날씨에도 불구, 관중과 치어리더들의 활기찬 응원과 선수들의 집중력 있는 플레이가 이날 승리를 이끈 원동력으로 풀이된다. 모 구단의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히어로즈가 올 시즌 만큼은 그간의 부침을 털어내고 프로 8개구단 중 하나라로 당당히 자리매김 할 수 있겠다는 밝은 전망을 가능케 한 기분좋은 승리였다.

    "나이가 어리다고 치어리더 못하란 법 있나요?"

    최연소 치어리더 김민주 양 어머니 정수연(40)씨

  • ▲ 김민주 양의 어머니 정수연(40)씨. ⓒ 김상엽 기자 
    ▲ 김민주 양의 어머니 정수연(40)씨. ⓒ 김상엽 기자 

    14일 넥센 히어로즈의 목동 홈경기에 시구자로 나선 김민주 양의 모습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한 여성이 있었다. 다름아닌 민주 양의 어머니 정수연(40)씨. 메이필드 호텔에서 회원관리 업무를 하는 정씨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딸 아이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야구장을 찾는다.

    "제가 사는 곳이 화곡동이라 목동 야구장과는 가까운 편인데, 민주가 치어리더 연습을 하는 잠실과는 너무 멀더군요. 그래서 민주를 연습장으로 데려가고 오고 하는 게 다소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민주가 치어리더 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야구의 '야'자도 모르던 애가 이제는 야구에 푹 빠져 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답니다."

    "민주가 6살이던 때 농구팀 경기에서 한 차례 응원을 한 적은 있지만 야구 경기는 생소하기도 해 지난해 여름 치어리더 제안을 받았을 때 많이 망설였다"는 정씨는 "이제는 적응도 됐고 생각보다 민주가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밝혔다.

    "원래 민주는 어릴 적부터 연기자가 꿈이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시간을 쪼개 일요일 오전 3시간 가량 연기 수업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후배인 구예우 치어리더 단장이 자꾸만 민주를 달라고 하는 거예요. 재능이 다분해 보인다구요. 그래서 지난해 일단 연습만 시켜본다는 게 어느새 이렇게 일이 커져버렸어요. 하지만 지금은 애 아빠도 그렇고 저 역시 민주의 열렬한 팬이 됐답니다. 마냥 어린 줄만 알았던 민주가 이렇게 멋진 치어리더가 됐다는 점이 너무 뿌듯하고 기뻐요."

    딸 민주가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에 대견스럽다가도 가끔은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는 정씨는 "이젠 더욱 더 민주가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민주의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부담감도 같이 커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고등학생인 민주의 오빠는 유도를 하고 있어 공교롭게도 스포츠 분야에서 두 남매가 활약하게 됐다"는 정씨는 "앞으로도 아이들이 원하고 추구하는 것을 가능하면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