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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가 이제껏 고안하고 실천해온 어떤 정치제도도 완벽한 것은 없다.
    모든 정치제도는 다 고질적인 약점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그 내재된 약점들이 치명적인 독이 되어 스스로 붕괴되기도 한다.
    자유민주주의 제도도 그 예외는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제도는 다른 정치제도에 비해 약점들을 적게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약점들을 가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약점들 가운데 치명적인 약점의 하나는 정치인의 정치적 수명이 그가 취하는 정책노선의 이론적 정당성보다는 대중 사이에서 그가 누리고 있는 인기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많은 공직자들을 국민이 선출하게 되는데, 그런 공직자들을 선출함에 있어서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후보자가 취하고 있는 정책노선이 국가 혹은 지방자치체의 형편에 비추어볼 때 타당한 것인지 여부를 치밀하게 따진 후에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의 언행이 자기들의 비위에 맞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선택한다. 그래서 공직자로 선출되기를 바라는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비위맞추기(인기영합하기)에 열을 올리게 된다. 

    유권자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주력하는 정치노선을 우리나라 정계와 언론계에서는 통상 포퓰리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용어사용을 정밀하게 하자면, 유권자들의 비위 맞추기에 주력하는 정치노선을 포퓰리즘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고, 인기영합 작풍이나 대중추수주의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어쨌든, 이러한 인기영합을 위해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주무기는 국가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국민들이 이행해야 할 부담(납세, 병역, 준법 등)을 감축하고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확대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국가는 스스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국민에게 제공하는 각종 유형 무형의 혜택은 모두 국민이 국가를 위해 이행하는 부담을 토대로 해서 제공된다. 그런데 이처럼 국민의 부담은 줄이고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혜택은 확대할 것을 약속하는 경쟁이 정치인들 사이에 행해지고, 그런 약속들이 이행된다면 국가는 조만간 경제적으로 파산하고 치안확립과 국방유지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파산하고 치안확립과 국방유지가 불가능한 국가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실현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정치인들이 대중인기영합 위주로 정치활동 하는 것을 자유민주주의를 사망으로 이끄는 치명적인 독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각종 선거가 회를 거듭할수록 이러한 대중인기영합 정치작풍이 확대되어 왔다. 이번 6월의 지방자치 선거 및 교육감 선거에서도 대중인기영합 작풍이 확대될 조짐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번 지방자치 선거 및 교육감 선거에서 대중인기영합 작풍이 확대될 조짐을 나타내는 증거의 하나는 초·중·고교 무료급식 전면시행 공약이다.
    우리나라의 각종 경제·사회적 지표들을 고려할 때, 그리고 국가와 민간구호단체의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으로 인해 극빈가정의 학생이라도 밥 굶는 일은 없어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초·중·고교 무료급식 전면시행은 결코 시급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는 매우 유력한 공약이다. 초·중·고교 무료급식 전면시행은 수많은 학부모들이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공짜 혜택이기 때문이다. 

    오는 6월의 지방선거에서 초·중·고교 무료급식 전면시행 공약이 어느 정도의 강도로 제시되고, 유권자들이 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가 앞으로 어느 정도의 건강상태를 유지할 것인지를 판가름할 중요한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1인당 GDP가 우리의 배나 되고 국가의 하드웨어 건설과 유지에 큰 재원이 소요되지 않는 북구 국가들에서나 시행되는 조치를, 1인당 GDP가 그들의 절반 정도이고 국가의 하드웨어 건설과 유지에 큰 재원이 소요되는 우리나라가 본 딴다는 것은 ‘뱁새가 황새 걸음 걷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피해를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에 초래하는 과정의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