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나이에 38선을 넘어 월남한 것은 나의 80년의 긴 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믿습니다. 나의 평고 동창들 중에는 북에 그대로 눌러 있으면서 노동당과 인민군의 상당히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갔다가 맥없이 사라진 친구들이 여럿 있습니다. 아마도 “성분”이 안 좋기 때문에 숙청되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도 나는 아직 대한민국 땅에 살아있습니다.나는 자유를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억압 밖에 없는 정치를 벗어나 그래도 자유의 싹이 보이는, 자유의 숨소리가 들리는, 남한 땅을 찾아 목숨을 걸고 월남하여 오늘은 백발이 성성하고 걸음걸이에 안정감이 없는 이 시대의 노인이 되었습니다.대한민국 땅에서도 “자유”를 부르짖다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남산의 정보부 지하실, 서빙고의 보안사 “호텔” 신세도 여러 번 졌고, 재판도 받았고 징역 15년, 자격 정지 15년의 중형을 언도 받고 안양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풀려나기도 했으며 봉직하던 대학에서 두 번 추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자유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그래도 남한에 넘어와서 살았기 때문에, 마음대로 김일성을 비판할 수 있었고, 그의 아들 김정일도 말로 글로 마음대로 때렸지만 아직도 목숨은 붙어 있어서 이러다간 하늘이 허락하신 천수를 누리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만일 내가 평양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면 거기서 매 맞아 죽은 지 오래일 것입니다. 나는 말하는 자유, 글 쓰는 자유를 지니고 이 날까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저 김정일이라는 자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습니까. 그 자가 만든 핵무기 때문에 전 세계가 뒤숭숭합니다. 그에게 엄청난 액수의 미화를 실어다 준 자들도 밉지만 그 달러로 가공할 핵무기를 만들어, 말리는 핵 실험을 번번이 감행하는 그 자는 죽이고 싶을 만큼 밉습니다.그래도 북녘 하늘 밑에서 김정일의 쇠사슬에 묶인 채 헐벗고 굶주린 2,300만 동포들에게 옷을 주고 밥을 주는 일, 약품을 주는 일을 어떻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런 원조가 김정일의 독재를 연장시키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그런 인도주의적 선행도 삼가야 한다고 느껴집니다.저런 자를 저 자리에 그대로 두고 한반도의 통일은커녕 평화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과제입니다. 실용주의 운운하다가는 김정일의 아들의 더욱 혹독한 독재를 겪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 자를 그대로 두고 대한민국의 번영과 세계의 평화가 보장될 수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