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민주주의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의회정치가 흔들 수 없는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나라에서는 진보가 있고 보수가 있습니다. 좌익이 있고 우익이 있습니다. 영국 같은 선진국에는 노동당도 있고 보수당도 있습니다. 마가렛 대쳐가 집권할 수도 있고 토니 블래어가 다우닝가 11번지의 주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 집의 주인이 누구이던 영국의 의회정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프랑스에도 독일에도 심지어 일본에도 좌파가 있고 우파가 있습니다. 일본 같은 나라도 우파가 집권하건 좌파가 집권하건 오랜 전통을 가진 국회의사당 안에서 의회정치가 실시될 것이 명백합니다. 일본에서도 공산당이 공인돼 있으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꿀 처지는 못 됩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북의 인민공화국에는 김정일의 독재 밖에 없고, 의회정치와는 거리가 멉니다. 국회의사당이 있기는 하지만 의회정치는 없고, 야당의 의석 수가 모자라면 다수결의 원칙은 무시하고 의사진행을 방해하기가 일쑤이고, 다수당인 여당은 날치기 통과로 밖에는 국사를 운영할 길이 없습니다.

    국민이 보고 깨닫게 해야지 밤낮 “장외투쟁”만 일삼는 판에 의회정치는 실종됐습니다. 북의 김정일은 자신의 독재체제로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기 위해 적화통일만 획책하는 이 마당에 “진보”가 있을 리 없고 “보수”가 있을 리 없습니다. “중도실용주의”는 더욱 불가능합니다. 한 평생 보수의 자리에 가 본 적도 없는, 가 볼 생각도 없습니다. 의회민주주의와 김정일 독제체제의 대결을 미화하지 맙시다. 누구를 “진보”라 하고 누구를 “보수”라 할 것입니까. 제발 나를 “보수”로 몰지는 마세요. 억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