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결에 실려 온다 / 그리운 그대 미소 / 뜨락에 가득 흩날리던 마른 잎새에
    함께 거닐었던 산길에 / 어려 아름답던 순간 / 지나가고 이제는 아쉬움만 남아
    뒹구는 마른 낙엽에 / 나의 붉은 마음 가득 실으면 / 그리움으로 타 오를 수 있나요
    낙엽이 떨어진 그 자리엔 / 그리움은 더 깊어라
    낙엽이 떨어진 그 자리엔 / 그리움은 더 깊어라

  • ▲ 박찬홍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명예교수가 공연을 마치고 꽃다발에 묻혀 있다. ⓒ 뉴데일리
    ▲ 박찬홍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명예교수가 공연을 마치고 꽃다발에 묻혀 있다. ⓒ 뉴데일리

    이한숙의 시에 이안삼이 곡을 붙인 ‘그리운 그대’가 무대를 울려퍼진다.
    힘 있는, 하지만 맑은 테너의 선율이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에서 열린 ‘우리 가곡 축제한마당’.
    무대의 주인공은 박찬홍(朴贊弘)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명예교수다.
    내일이면 70 반열에 서는 올해 69세의 체육교육학을 전공한 학자이다. 하지만 실력이며 무대 매너는 밀라노 스칼라좌의 대가수 못지 않다.
    ‘가곡 부르는 체육교육학 교수님’! 이것만으로도 기사는 된다.

    그런데 여기 기가 막힌 사연이 하나 더 있다.
    박 교수의 친구들은 박 교수를 ‘4성 장군(four star general)’이라고 불렀다. 적어도 올해 4월 중순까지는. 그런데 지난 4월 하순 원치 않는 진급을 했다. 원수(元帥)! 즉, 5성 장군이다. 백선엽 대장을 한국 첫 원수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원수라니?
    박 교수의 별은 40대 중반부터 시작된 암과의 투쟁에서 얻은 ‘별’이다.
    남들 한번 겪기도 힘든 암과의 전쟁을 다섯 번이나 치렀고 매번 승리했다. 그리고 무대에 설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상승(常勝)장군의 빛나는 별임에 틀림없다.
    첫 전쟁은 1985년 9월 시작됐다.
    공주대학교에 출근하던 고속버스 안에서의 갑작스레 복통이 기습했다. 병원에서 ‘상행결장암’ 진단을 내렸다. 장을 50cm 정도 잘라내고, 장기간의 방사선 치료와 항암주사를 1년 정도 맞아가며 치료했다.
    그리고 10년을 무탈하게 살았다.
    그러던 1996년 이번엔 ‘연합군’이 밀어닥쳤다. 암도 연합작전을 한다.
    ‘위암’에 ‘횡행 결장암’까지 왔다. 이전의 병력과는 아무 상관없는, 새로 생긴 암이었다.
    위장의 반 정도와 12지장 일부, 그리고 횡행결장을 다 잘라냈다. 두 종류의 암이니 아침이면 입원실에 두 주치의가 따로 따로 회진을 돌았다. 그 때마다 인턴 의사가 차트를 들고 “이 환자분은 ‘더블 캔서’ 환자”라고 보고했단다.
    중환자실을 거쳐 가면서, 2개월 여 만에 퇴원을 했다. 준장에서 소장을 거치지 않고 삼성장군인 군단장급으로 ‘특진’을 한 셈이다.
    “이쯤 했으면 제대했겠지”라고 백두산이며 금강산도 올랐고 북유럽이며 중국의 황산 나들이도 했다.
    기자도 황산에 올랐지만 참 올라가기가 ‘까칠한’ 산이다.

    몇 년 조용해 ‘제대’를 확신하고 있었는데 2004년 1월 암이 또 문을 두드렸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기에, 이다지도 나를 괴롭힌단 말인가.”
    박 교수는 당시의 참담한 심정을 그렇게 표현했다.
    이번엔 ‘직장암’이었다. 그것도 많이 진행이 되어서 ‘S결장’에도 문제가 있다는 진단이었다.
    S결장과 직장의 반을 잘라내고 한 1년 생사의 문턱을 소요했다.
    역시 대장 진급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4성 장군’이 되느라 보통 1m 50cm 정도 되는 대장을 다 잘라버려 30cm 정도 남았다.
    그런데 지난 4월 중순 또 몸이 이상했다.
    ‘설마’ 하고 병원을 찾았는데 ‘역시’였다.
    이번엔 담도암이었다. 암 투병도 반복되면 익숙해지는지 두 달 만에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복교육’의 힘이다.
    이게 마지막일 것이다. ‘육성 장군’은 어느 나라 편제에도 없지 않은가.

  • ▲ 박찬홍 교수의 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학생들'. ⓒ 뉴데일리
    ▲ 박찬홍 교수의 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학생들'. ⓒ 뉴데일리

    이렇게 힘들게 살다 보니 감사함을 알게 됐다. 벼랑 끝에 서본 사람만이 느끼는 삶에 대한 고마움이다. 그래서 여생을, 가슴 가득한 고마움을 남을 위해서 바치려 한다.
    뭘로? 노래다. 특히 동요다.
    원래 노래를 잘 부르고 즐겨 불렀다. 지난 2006년 정년퇴임식도 학교가 아닌 공주문예회관 대강당에서 제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치렀다.
    매주 수요일 오후는 양천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 양천구 가곡 및 동요교실을 운영한다. 금요일 오전은 고양시 덕양노인종합복지관에서 덕양구 동요교실을 연다.
    4월 ‘원수 진급’ 전에는 치매노인 보호센터에도 가서 동요를 가르쳤는데 너무 힘이 들어 두 곳만 가르치고 있다.
    왜 동요일까?
    박 교수는 “가곡과 동요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혼이 담긴 노래”라고 정의한다.
    ‘생명의 호흡’이고 ‘마음을 아름답게 해주는 촉진제’란다. 또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밝은 미래의 희망꽃’이란다.
    “노인들이 동요를 부르면 몸도 마음도 젊어지고 순수해집니다.”
    박 교수는 노인들이 동요를 부를 때의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치매 예방에도 특효란다.
    치매 예방과 치료에 미술치료와 음악치료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음악치료가 으뜸이라고 전문의들이 얘기했단다. 하긴 30년 병원출입을 한 ‘전문환자’이니 틀림없는 말일 것이다.
    박 교수는 동요만 아니라 동화도 쓰고 싶어서 틈틈이 공부도 하고 문학회 모임에도 열심히 얼굴을 내민다. 바쁘지만 봉사하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아 하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다.

    앞으로의 희망? 우리 주변에서 가곡과 동요가 좀 더 많이 불리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보다 많은 노인종합복지관에 동요교실이 생기는 것이다.
    동요가 흐르는 거리, 사회도 밝고 아름다워질 것 같다.
    ‘우리 가곡 축제한마당’의 마지막 무대는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부르는 박화목 시, 김공선 곡의 ‘과수원길’이었다.

    동구밖 과수원길 /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 하얀 꽃 이파리 / 눈송이처럼 날리네 /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 둘이서 말이 없네 / 얼굴 마주 보며 생긋 /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아! 이 노래를 어느 소풍길에 불렀더라? 마음이 아늑해왔다. 동요가 이렇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