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카고가 2016년 올림픽 개최지 경쟁에 나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저도 브라질의 리오데 자네이로가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미에서 한 번도 올림픽을 개최하지 않았고, 브라질이 남미의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다음에 브라질이 개최해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후보지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시카고의 언론은 물론이고 미국의 언론들은 시카고가 브라질과 막상막하의 접전을 전개하면서 어쩌면 브라질을 누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이라고 말하는 희망적인 기대에 "오바마"가 있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가서 로비를 하면 "어쩌면"이 현실로 될 수 있다는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미국인들은 그만큼 오바마 효과를 믿었고 기대했습니다.
그래도 시카고가 브라질을 당할 수 있겠느냐고 고개를 갸웃둥하는 저에게 제 큰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바마가 코펜하겐에 간다고 해서 세계 IOC 위원들을 설득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만약 오바마가 코펜하겐에 간다면 시카고가 올림픽 개최지로 되는 것은 99.9% 확실해요." 그 이유는 이랬습니다. "오바마가 코펜하겐에 갈 경우, 이미 시카고가 개최지로 되는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오바마가 거기에 가세해서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지요. 그렇지 않다면 백악관 보좌관들이 오바마를 코펜하겐으로 못 가게 할 거 아녜요. 누가 대통령을 패배자로 만드는 게임에 뛰어들게 해요?" 저는 이 말이 그럴듯하게 들려서 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바마 대통령이 코펜하겐에 간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시카고가 2016년 개최지로 될 것이라고 거의 믿게 되었습니다.
올림픽 개최지가 발표되던 지난 주, 개최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축제를 하기위해 시카고 다운타운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은 시카고가 첫 라운드에서 탈락되었다는 소식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물론 저도 놀랐고, 저에게 그럴듯한 주장을 해서 제 생각을 바꾸었던 아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코펜하겐까지 갔는데 시카고가 탈락된 것에 놀랐지만,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은 시카고가 첫 라운드에서 94표 가운데 18 밖에 얻지 못하고 꼴지가 되는 창피스럽게 망신을 당하면서 탈락했다는 것입니다. 올림픽 개최지가 브라질의 리오데 자네이로와 미국의 시카고 간의 싸움이라는 지금까지의 예상이 너무 무참하게 깨졌습니다.
이것을 놓고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이 지역 정치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첫 투표에서 아시아는 동경을 지지하고, 유럽은 스페인을 밀고, 남미나 제3세계는 브라질을 지원하기 때문에 미국을 강력하게 밀 지리적 우호국이 없다는 주장도 있고, 미국 IOC가 올림픽 텔레비전 중계료 문제로 국제 IOC와 불편한 관계를 넘어서서 적대적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정치가 은밀한 막후 정치로 부패했기 때문에 미국식 투명 로비는 먹혀들지 않는다는 냉소도 있었고, 오바마가 코펜하겐으로 간 것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인기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까지 가세한 미국의 지나친 쇼가 세계 IOC 위원들에게 거부감을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바마가 로비를 간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 태도가 너무 무성의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코펜하겐에 불과 5시간 머물면서 형식적으로 얼굴만 내민 것은 IOC 위원들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한 것으로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는 비판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카고가 갱들이 많고 정치적으로 부패한 도시라는 나쁜 이미지에다 정체되고 창의력이 결여된 도시 이미지도 시카고를 참패시키는 영향을 주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공화당 측에서는 시카고가 코펜하겐으로 가는 것을 많이 비판했습니다. 경제가 힘들어 실업자가 9.8%로 뛰어 올랐고, 건강의료 보험 법안을 놓고 논란이 치열하고, 아프가니스탄이 제2의 베트남이 되느냐 하는 논쟁이 가열되고, 이란의 핵문제가 다시 뜨겁게 부상하는 산적한 국내 문제를 젖혀놓고 대통령이 올림픽 세일즈맨으로 외유를 한 것은 오바마 스타일의 벌려놓는 정치의 표본이라고 공격했습니다. 오바마는 이슈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거기에 전력투구하는 집중 정치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출신지역을 이익을 위해 동네 정치 로비스트가 되면서 미국 대통령의 권위와 힘을 실추시켰다는 비판을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일로 정치적 타격을 받았습니다. 치명적인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대통령을 패배자로 만들었고, 결과가 확실치 않고 위험부담이 많은 스포츠 정치에 오바마를 끌어넣은 백악관 보좌관들의 미숙한 판단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오바마를 따라 다니는 꼬리표가 경험 부족이고 아마추어리즘 정치였는데 이번 올림픽 정치는 그러한 비판을 입증하는 것이 됐습니다. 대통령이 화급한 국내 문제를 제쳐 놓고 코펜하겐으로 갈 때는 판세가 확실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을 잘 못 읽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가서 판세를 바꾸겠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너무 지나친 오만이었고, 오바마가 갈 경우 "어쩌면" 시카고가 선정될 수 있다는 환상을 믿었다면 판단력의 부족입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이제는 미국이 다시 한 번 개최할 시기가 됐다면서, 2012년에 뉴욕이 나섰었고, 이번에 시카고가 뛰어들었습니다. 시카고는 올림픽 유치를 준비하기 위해 이미 5천만 달러를 사용했습니다. 4년 전 뉴욕이 19표를 얻고 2차 투표에서 탈락할 때도 미국인들이 자존심을 상했는데 이번에는 더욱 무참하게 타격을 받았습니다. 뉴욕의 수모 때도 그랬고, 이번 시카고 망신에서도 많은 미국인들은 아직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탈락의 원인을 너무 피상적이고 지엽적인데서 찾고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 미국의 오만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4년 전 뉴욕이 패배한 것은 당시 이락전쟁을 시작했던 부시 정부의 오만에 있었던 것 처럼, 이번 시카고의 참패 역시 오바마 정부의 오만에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오바마 사람들은 오바마의 인기를 과신했고, 오바마가 몇 시간 코펜하겐에 들려 잠간 얼굴을 내밀고 IOC 위원들과 악수를 한번 하면 오바마 바람이 불어서 대세가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보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분위기를 바람으로 뒤집은 오바마 사람들의 착각입니다. 미국의 오만은 막후 절충이 복잡한 스포츠 정치를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대통령 부인이 대부대를 이끌고 지나치게 법석을 떤 것도 미국의 오만이고, 미국 IOC가 국제 IOC와 불화를 계속하는 것도 미국의 오만이었습니다.
또 하나,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것이 될 수 있는 요인이 반미감정입니다. 참패의 원인을 오만에서 찾는 사람들도 반미감정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스포츠 정치를 너무 정치적으로 확대시키고 극단화 시킨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참패의 본질이 세계에 팽배하고 있는 반미감정에서 비롯된 것이고, 반미 감정의 뿌리는 미국의 오만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 의식은 합리적이고 실질적이어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본질적인 것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원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 논리의 한 복판에는 미국 중심의 자기 논리가 요지부동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미국의 오만입니다.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그 본질적인 원인이 미국의 중동정책에 있다는 지적을 반애국적이고 비미국적으로 적대시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물론 테러리스트의 광기와 잔인성이 테러의 시작이지만, 자기반성을 위해 본질적인 것에 접근하지 않으면 오만의 뿌리는 뽑을 수 없고, 반미감정은 계속 남아서 각 분야에서 얼굴을 내밀 것입니다. 뉴욕과 시카고의 참패가 반미 감정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미국이 인식해야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카고 망신에서 중요한 점은 미국의 정보력이 뛰어나면서도 오류가 많다는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백악관 스태프들이 오바마 대통령을 코펜하겐으로 가도록 조언한 것은 미국이 가진 정보력으로는 시카고가 확실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대통령을 위험 부담이 큰 도박판으로 뛰어들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백악관 보좌관들이 아무리 오만하고 순진해도 패색이 완연한 스포츠 도박판에 대통령을 가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9.11 테러를 방지하지 못한 것은 미국의 정보 오류와도 연관이 있었습니다. 이번 시카고 참패를 초래하고, 거기에 대통령을 패배자로 망신시킨 것은 IOC 위원들 심중을 잘못 읽은 정보 오류일 수 있습니다. 이번 시카고 올림픽 탈락은 미국의 오만을 되새기고, 반미의 뿌리를 재점검하고, 오바마 정치가 한 단계 원숙케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