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씨 ⓒ뉴데일리
    고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씨 ⓒ뉴데일리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는데 점심식사를 걸렀다고 했다.

    “오늘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혀요. 좋은 일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산란한지 모르겠어요.”

    김종선씨는 보름 전인가 맹장수술을 했다. 여드레나 입원을 했다. 얼굴에 아직 수술 여운이 남아 있었다. 7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내일(23일) 돌아온다. 몸 바쳐 지킨 서해를 방어하는 유도탄 고속정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남편을 만나러 그는 내일 아침 성남비행장에서 진해로 향하는 군항기에 오른다.

    결혼 6개월만에 작별인사도 없이 떠난 남편, 그리고 그 희생을 외면당했던 지난 세월의 아픔이 그를 짓누른다.

    “지금까지 있었던 너무 많은 일이 가슴을 스쳐 지나간다”고 그는 말했다. 왜 아니겠는가.

    남편 고 한상국 중사는 제 2차 연평해전이 있던 2002년 6월29일 전사했다. 조타장이던 그는 침몰한 참수리 357정과 함께 차가운 서해바다 밑에서 41일을 있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탓에 처음엔 실종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그가 어디로 피신했을 지도 모른다고 수군댔다. 우리 영해에서 침몰된 우리 함정을 41일 만에 인양했다.

    그리고 그 배엔 그의 남편이 있었다. 두 손으로 참수리 357호정의 키를 굳세게 잡고 있었다. 왼쪽 옆구리를 파고들어온 북한군의 85㎜ 전차포탄은 남편의 가슴을 파헤치고 오른쪽 어깨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기적도 있었다. 물고기들이 시신을 해쳤을 것이란 우려와 달리 남편의 시신은 온전한 상태였다.

    이들을 영결하는 날, 당시 대통령은 일본으로 월드컵 축구를 구경하러 갔다. 나라를 위해 숨진 이들을 국무총리도 장관도 환송하지 않았다. “이런 나라는 없다”며 그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3년 만에 어머님의 건강 때문에 돌아왔다.

    “좋은 일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지 모르겠어요.”

    그의 일터인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마주앉은 시간 내내 그는 말을 아꼈다. 남편의 이름을 딴 한상국함으로 이름지어진 유도탄 고속정이 내일 진해에서 진수식을 갖는다. 함께 전사한 고 조천형 중사의 이름을 딴 조천형함과 함께다. 그 함정들은 남편의 목숨과 바꾼 서해 NLL을 지킬 것이다.

    남들 듣기좋게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지만 솔직한 그는 그런 말은 안했다. 솔직히 고통스럽던 세월 아니었는가. 나라도 국민도 외면한 남편의 죽음은 결혼 단 6개월만에 찾아왔다.

  • ▲ 한상국함과 같은 모델의 윤영하함 ⓒ 뉴데일리
    한상국함과 같은 모델의 윤영하함 ⓒ 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