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대규모 인적 청산, 30년 숙련 정보 와해수사 외압·코드 인사가 초래한 정보 판단 왜곡간첩수사권 폐지 등 안보 역량 공백 제도화걸프·이라크전, 휴민트 없는 테킨트 한계 보여
  • ▲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해 12월 29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P·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해 12월 29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P·뉴시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인공지능(AI) 기술과 휴민트(HUMINT·인적정보)를 결합해 이란 지휘부 제거와 핵심 군사시설 정밀 타격에 성공한 대(對)이란 공습 사례는 현대전에서 AI와 휴민트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한반도 안보 상황과 현대전은 점차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지만 대한민국의 안보 대응은 이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정보기관이 지난 30여 년간 인적·기능적 축소를 반복하면서 정보 자산의 연속성을 훼손하며 사실상 '휴민트 진공 상태'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정보 단절의 역사 …  DJ 정부 대규모 인적 청산이 시발점

    5일 외교·군사 분야에 따르면 정보기관 인적 자산 단절의 역사적 시작은 1998년 이종찬 안기부장 취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4월 1일 자로 안기부(현 국가정보원) 소속 직원 581명에 대해 보직 해임 및 재택근무 지시가 내려졌다. 여기에는 고위 간부 140여 명이 포함됐다.

    당국은 약 1년 간의 유예 기간을 두며 자진 사퇴를 종용했고 이에 응하지 않은 직원 전원을 1999년 3월 31일 자로 면직 처리했다. 이후 2차로 300명이 추가로 해임되면서 총 881명의 숙련된 정보요원이 한꺼번에 조직을 떠나야 했다. 이후 대북 공작 업무를 거의 하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대북 심리전을 담당하던 부서를 반으로 축소했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저서 '좌파 정권은 왜 국정원을 무력화 시켰을까'를 보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노선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정보 프로젝트와 그간의 노력은 폐기되거나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며 "국정원 직원 간 지역적 갈등이 심화하기도 했다. 특정 지역 출신들이 그간 상대적으로 인사 불이익을 받아 왔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정원 내부에도 지역 갈등의 병폐가 스며들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면직된 고위 간부는 총 26명이다. 이중 출신지가 확인된 21명 중 영남 출신이 1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밖에 서울(2명), 충남(1명), 강원(1명) 순이었고 호남 출신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곧 인적 청산의 핵심이 특정 지역 출신 배제와 정치적 코드 인사였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인적 청산의 피해자인 전직 국정원 간부는 뉴데일리에 "인사 행정의 형평성보다는 정치적 배경에 따른 '살생부식 숙청'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며 "당시 당국은 우리를 '무능력한 간부'로 지칭하며 승진 및 보직 관련 인사 청탁, 직원 간 불화 조성 등을 면직 사유로 내세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면직 사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며 "이는 실질적인 정보 역량 평가보다는 조직 장악을 위한 명분 쌓기였다고 본다"고 토로했다.
  • ▲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3월 12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신임 비서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국정홍보원 제공
    ▲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3월 12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신임 비서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국정홍보원 제공
    ◆盧 정부, '일심회' 수사 중단 압력과 '코드 인사'

    휴민트 역량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정보기관의 중립성 훼손과 정책적 편향성으로 인해 심각한 구조적 퇴행을 겪었다. 노무현 정권이 압력을 가해 중단한 '일심회' 간첩 수사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전 원장의 저서에 따르면 미국 교포 마이클 장이 조직한 간첩단 조직인 '일심회'라는 명칭의 간첩단은 김정일을 한마음으로 모신다는 의미의 일심회라는 명칭을 가졌고 조직원 5명 모두 유죄 판결로 복역했다.

    이 전 원장은 "당시 수사를 지휘한 국정원 수사국장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불려 갔다. 수사국장이 직접 민정수석실로 불려 가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경찰 출신인 이상업 당시 차장이 수사국장에게 민정수석실에 가야 한다고 종용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민정수석은 수사국장에게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 수사국장이 '조사를 중단할 수 없다'고 뚝심 있게 대답하자 민정수석은 '국장을 더 할 의사가 없는 생각인 모양이네'라고 말하고 면담은 종료됐다"며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승규 원장이 사표를 냈고 김 원장은 퇴임하면서 일심회 사건의 수사 중단 압력을 받았다고 언론에 밝혔다"고 전했다.

    이 전 원장은 또 "김만복 원장이 후임으로 원장직을 맡았고 수사국은 추가 수사 계획을 김 원장에게 보고했으나 추가 수사는 실행되지 못했다"며 "수사국장은 경질됐고 일심회 사건 수사는 중단됐다. 추가 수사를 피한 대상자들은 후에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다. 정부가 이처럼 노골적으로 간첩 수사를 막은 사례는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노무현 정부 당시 국방부 정보본부, 국군방첩사령부(舊 기무사령부) 등 핵심 안보 부서의 지휘부에 단행된 이른바 '코드 인사'는 정보 자산의 객관적 운용보다는 통치권자의 정치적 지향점에 정보 보고를 맞추는 부작용을 낳았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뉴데일리에 "이는 군의 정보 판단 능력을 저하시키고 위기 상황 발생 시 군사적 대응의 원칙을 왜곡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며 "정치적 고려가 우선된 정보 지휘 체계는 현장 대응의 무력화를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과거 제2연평해전 등 북한의 도발 국면에서 우리 군이 '비례성의 원칙'에 입각한 즉각적인 응징 대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배경에는 정권의 대북 정책 기조에 맞춘 정보 해석과 작전 지침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 ▲ 2015년 8월 25일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문재인 당시 대표와 박지원 당시 한반도평화안보특별위원장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뉴시스
    ▲ 2015년 8월 25일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문재인 당시 대표와 박지원 당시 한반도평화안보특별위원장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뉴시스
    文 정부의 휴민트 청산, 법제화를 통한 '기능적 해체'

    이러한 과거의 인적 청산 방식은 문재인 정부 들어 법제화를 통한 '기능적 해체'로 진화했다. 과거에는 사람을 바꾸는 방식이었다면 문재인 정부 당시 단행된 국가정보원법 개정은 안보 수사 기능을 여소야대 국회를 통해 합법적으로 무력화하는 방식이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대외정보관(IO) 제도 폐지는 대남 공작을 차단하고 현장 정보를 수집하는 물리적·제도적 기반을 합법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약화시킨 것이다.

    대공수사권이 폐지된 2024년 1월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안보 수사 실적은 정량적 지표에서 극명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유 원장은 "국정원이 수사권을 보유하고 경찰과 공조했던 2023년의 경우 제주 간첩단 및 창원·민주노총 침투 간첩단, 전북 지역 간첩망 등 총 11건의 조직적 안보 위협 사례를 적발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이는 장기간에 걸친 정보 수집과 전문적인 수사 역량이 결합된 결과"라며 "그러나 대공수사권을 경찰만 갖게 된 이후인 2024년과 2025년 현재까지 검찰 기소와 법원 판결로 이어지는 유의미한 대남 간첩 적발 사례는 사실상 전무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부 통계상에 나타나는 송치 건수 역시 탈북자 관련 사안이나 단순 보안법 위반 의혹 등 지엽적인 사건에 국한돼 있으며 과거와 같은 대규모 조직적 간첩망 적발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특히 경찰이 검찰로 송치한 사건 중 상당수가 증거 불충분이나 실체적 진실 규명의 미흡으로 기소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수사 역량의 질적 저하를 방증하는 지표"라고 부연했다.

    ◆휴민트 검증 없는 AI 안보는 사상누각 … 평양·황주 비행장 모형기 사건 주목

    휴민트를 통한 실증적 교차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테킨트(TECHINT·기술정보)는 신뢰도를 70% 이상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안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1990년대 후반 평양·황주 비행장 모형기 사건, 그리고 걸프전과 이라크전은 위성과 감청 장비가 포착한 물리적 현상이 적의 전략적 기만이나 의도적 은닉과 결합될 때 정보 분석의 치명적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미 정보당국은 위성 정찰로 북한 비행장에 미그기 30여 대가 배치된 것으로 판단됐으나 확인 결과 대부분이 공과 목재로 만든 모형기였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의 기만 전술은 이민트(IMINT·영상정보)의 취약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이라크군은 금속과 섬유유리를 활용해 실물 크기의 전투기와 전차, 스커드 미사일 발사대 모형을 대량으로 운용했고 내부 열 발생 장치를 통해 적외선 신호까지 모방함으로써 다국적군의 정밀 유도 병기를 기만했다.

    그 결과 다국적군은 수차례의 오폭을 기록했으며 이는 현장에서 실물을 확인하고 기만 여부를 판별할 휴민트의 뒷받침 없이는 고가의 과학 정보 자산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는 기술 정보의 해석 오류가 정보 실패의 핵심 원인으로 작용했다. 미군은 위성 정보를 통해 이라크 공군 기지의 활동 급감을 포착했으나 이를 기만 전술로 오판하거나 전력 궤멸로 간주했다.

    그러나 전후 조사 결과 이라크군이 미군의 제공권을 의식해 주력 기체인 미그기 등을 모래 속에 매설하는 방식으로 자산을 은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시긴트(SIGINT·신호정보)에 의존한 수뇌부 정밀 타격의 한계도 분명히 드러났다. 미군은 위성전화 추적 등 첨단 기술을 동원해 사담 후세인의 위치를 특정하고 폭격했으나 실제 표적 확보에는 실패했다. 이는 발신원의 위치는 잡았지만 그곳에 실제 표적이 존재하는지 또는 기만용 발신 장치인지 확인하는 최종 검증 단계에서 휴민트 데이터가 결여됐기 때문이다.

    즉, 기술 정보가 제공하는 파편적 데이터를 유의미한 정보로 전환하는 것은 결국 숙련된 요원이 확보한 현장 정보, 즉 휴민트다. 휴민트 자산이 붕괴된 상태에서의 AI 안보 체계가 데이터 오염과 오판의 가속화라는 위험을 내포한다는 사실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AI 기반 안보 체계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청한 한 안보 전문가는 "사이버 작전이나 AI 기반 정보 분석에서 휴민트의 중요성은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확인됐다. 최근 이란 공습에서 성공적으로 입증했듯이 이스라엘과 미국은 군사동맹 관계에서 공조를 통해 이를 100% 활용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재명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가 이러한 확실한 동맹 관계에 기반해 과감한 결단으로 공동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