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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 뉴데일리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을 사회라고 하는데 사회의 기본이 무엇이냐 하면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만 가지고 사회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믿습니다.
가정도 하나의 사회이고 사회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회학자들도 가정이 안정돼야 사회도 안정된다고 합니다. 부부 사이, 부자 관계가 법으로만 평화나 행복을 누리게 되지 않습니다. 국가와 같은 큰 집단, 큰 사회도, 법보다는 한 층 차원이 높은 의리라는 것이 제구실을 해야 한다는 느낌이 강해집니다.
우리가 정몽주를 우러러 보는 것은 그가 고려조와의 의리 때문에 이성계 일파의 러브 콜을 물리치고 선죽교에서 칼을 맞았건 몽둥이를 맞았건, 피를 철철 흘리며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성삼문은 세종대왕께 대한 신하의 의리를 지키고자 단종의 복위를 위해 거사키로 결심했던 것이고, 그런 사실 때문에 한강변 모래사장에서 거열당했고 그의 시체는 몰려드는 까마귀 떼의 밥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순신은 자기의 충성을 몰라주는 선조이었으나, 통영에 진치고 있으면서 앞바다에서 잡은 좋은 생선만 골라서 잘 발려 그 임금께 진상 올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도 신하의 의리를 지켰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인물입니다.
안중근은 망해가는 대한제국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이또 히로부미를 향해 권총을 발사하여 그를 현장에서 쓰러 뜨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순감옥에서 서른 두 살의 젊은 나이에, 교수대에서 그 장엄한 삶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자존심 있는 국민으로 떳떳하게 살아갑니다.
만일 노태우가 전두환과의 의리만 지켰어도 나라가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간사한 인간들이 그를 찾아가 “전두환이 국민 사이에 인기가 없으니 그와 가깝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그를 해외에 추방을 하거나 외딴 곳에 유배를 보내세요”라고 권했을 때, 만일 노태우가, “이놈아, 내가 누구 덕에 대통령이 됐는가. 그런 권고는 나를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어. 내 앞에서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야단쳐 보냈으면, “5공”이 청산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본인들이 원치않는 “귀양살이”를 백담사에서 내외가 함께 살게 하였으니, 김영삼 눈에도 한심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전두환·노태우를 큰집에 보내는 김영삼의 의리는 또 무엇입니까. 3당 통합 때 민주계가 도대체 몇 명이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습니까. 6명입니까, 7명입니까. 압도적 다수가 민정계였고 민정당은 전두환·노태우가 만든 정당이 아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 전직 대통령을 안양교도소와 의왕구치소로 보내는 것을 보고, 김영삼의 의리 없음을 개탄하였습니다. 의리 없는 지도자가 큰 일 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