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연합학력평가 문제지 유출 사건은 교육청의 허술한 시험지 관리시스템 때문에 빚어졌다.

    현직 고교 교사는 물론 메가스터디와 비타에듀 등 국내 굴지의 온라인 입시업체, EBS 방송국 외주 PD 등이 수년간에 걸쳐 유착 고리를 형성해 문제지를 상습적으로 빼돌렸지만, 단속은 전무했다.

    교육당국의 시험지 관리체계가 웬만한 사설 입시학원만도 못했음이 이번 경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4월부터 올 6월까지 6차례에 걸쳐 EBS 방송국 외주 PD 윤모(42)씨에게 문제지를 건넸다.

    교육청은 통상 방송 제작 협조 차원에서 시험 전날 미리 문제지를 주는 것이 관행이라고 해명하지만, 시험지의 사전 유출을 막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문제지 유출 가능성을 애써 외면한 셈이다.

    시험지 인쇄업체 선정과 관리ㆍ감독도 허점투성이였다.

    교육청은 매년 자체적으로 인쇄업체에 대한 심사를 벌여 자격 요건을 갖춘 업체에만 입찰 자격을 부여한다고 했지만,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인쇄업체 3곳은 모두 인쇄 설비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곳이다.

    특히 일부 업체는 유명 입시학원의 계열사이거나 대표이사와 혈연관계에 있는 등 특수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교육청은 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청 심사가 허술하게 진행됐다는 방증이다.

    부실한 업체 선정과정과 더불어 교육청은 이들에 대한 감독 역할도 사실상 방기했다. 인쇄 기간에도 현장 방문은 물론 인쇄 부수를 확인하는 절차조차 없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업체들은 이를 악용해 인쇄업무를 다른 업체에 하청주는 등의 계약위반 행위도 서슴지 않았지만, 이러한 행태는 최근 수년간 단 한 번도 적발되지 않았다.

    결국 연간 총 140억원, 시험 시행에만 매회 20억원이라는 거액의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전국연합학력평가는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한 채 사교육의 배만 불려준 꼴이 됐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에 메가스터디와 비타에듀, 이투스, 비상에듀 등 국내 1~4위 온라인 입시업체가 모두 연루된 점을 들어 '공교육이 사실상 사교육에 먹힌 꼴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전국 180만명의 수험생이 보는 전국 단위 시험지가 이런 총체적인 부실 속에 수년간 관리되고 있었다는 점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사립학교 교원의 비리에 대한 법 규정 보완도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지를 입시업체에 유출한 현직 사립학교 교사가 5명이나 됐지만, 형사처벌은 단 1명에 불과했다.

    국ㆍ공립학교 교사가 문제지 유출 등의 비리를 저질렀을 때는 국가공무원법 등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사립 교사는 어느 법에도 처벌 규정이 없어 소속 학교의 자체 징계에 의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경찰 관계자는 "학원 비리를 막으려면 사립학교 교원의 비리도 공립학교와 똑같이 처벌될 수 있도록 사립학교법과 교원 관련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