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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타이완 태풍피해를 빨리 도와줘야하는 이유
최근 제8호 태풍 '모라꼿'으로 인한 폭우와 산사태로 타이완 남부 도시 카오슝(高雄)에서 수백명이 실종 또는 사망하는 재해가 발생했다. 50년 만에 겪는 큰 수재에 대하여 타이완은 군부대까지 동원하여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수만명의 이재민이 아직도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수습을 해보려던 타이완 정부가 결국 국제사회에 구원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중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까지 원조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타이완이 미수교국이라는 이유로 평소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아 왔지만, 지금이야말로 민첩한 원조의 손길을 뻗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민간차원에서도 민첩한 구호의 손길이 이어져야 한다.타이완은 국토와 인구가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이지만, 무역규모로 보면 세계 14위의 경제 강국이다. 우리나라에는 5번째 수출대국이며 매년 우리에게 대개 100억달러 이상의 무역 흑자를 내주는 '효자' 나라다. 타이완 편에서 보아도 한국은 역시 5번째로 큰 수출국이며 한국은 타이완의 어려운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나라로 여기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중화민국은 공산당과의 중국 본토 내전에서 패배하여 1949년 타이완으로 왔고, 1971년에는 유엔에서조차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로 인정을 받지 못하여 축출당한 후, 국제사회에서 정당한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륙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1992년에 타이완과 단교를 하였지만, 타이완과 우리와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중화민국은 우리의 광복군과 항일전쟁을 함께 하면서 우리 임시정부를 지원하여 우리나라의 독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한국전쟁 중에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유엔군 참전에 큰 역할을 했다.
타이완은 우리처럼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공산주의와 싸운 경험에다 유교문화에 젖어 있어서 그런지,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비롯하여 우리와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타이완인들에게는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정(情)과 한(恨)까지 있어서, 우리와는 말을 하지 않고서도 쉽게 마음을 통할 수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가 1992년 타이완과 단교한 후 한동안 서먹하던 정치적인 관계는 경제적 교류가 밀접해지면서 다소 회복하는 기미를 보이기도 했는데, 작년 2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갑자기 위기 상황에 떨어지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온 타이완 국회의장을 대표로 하는 25명의 축하 사절단이 중국 정부가 타이완 참가를 싫어한다는 말을 듣고, 우리 정부 측에서 타이완 사절단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못 들어가게 하여 참석을 하지 못하고 돌아간 사건이 있었다. 초대받고서도 문전박대를 당한 타이완 사절단은 인천공항을 떠나면서 "남한이 독립국이 맞느냐"고 한심해했다고 한다.
작년 5월 마잉주 총통 취임식에 물론 우리 정부 대표는 초대받지 못했다. 타이완과 수교하고 있는 23개국 정상들은 물론 싱가포르를 비롯한 전 세계 유수한 미수교국 대표들이 대거 참석했는데도 말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각각 350여명, 250여명의 사절단이 대거 참가하였다고 한다.
타이완과의 정치적 상처를 치유하려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카오슝 이재민의 구조와 재난 회복을 위하여 구조의 손길을 뻗쳐야 할 때이다. 작년에 중국 쓰촨성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현지에 날아가 구조와 재난 회복에 온갖 정성을 보이지 않았는가. 수년 전 우리나라에서 수해로 이재민이 많이 발생했을 때, 타이완 정부가 우리에게 10만달러를 지원해준 일도 있었다. 우리는 타이완에 대한 선린우호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수해 원조는 빨리 할수록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