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마주앉았습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둔 아이는 논문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빠, 논문 주제를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조언을 바라는 눈빛이지만, 전공이 다른 저는 아무런 얘기도 해줄 수 없습니다. 그저 나열하는 주제들에 ‘아, 그래?’라며 건성으로 대답해줍니다. 아이도 제가 귀 기울여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말은 제게 하고 있지만 아이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고 있습니다.
    그저 제게 얘기하는 형식만 갖출 뿐입니다.
    우리 모두 이렇습니다.
    일상에서 대화란 남이 아닌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외롭지 않으려고 꾸준히 자신에게 속삭이는 존재 확인입니다.

    논문 주제 토론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는 문득 제 팔을 잡고 말합니다.
    “누가 뭐래도 난 이 세상에서 아빠를 가장 존경하고 사랑해.”
    세상에서 가장 큰 상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말 많고 탈 많은 세상, 곧은 것도 남들이 굽었다고 하면 굽은 것이 되는 세상에서, 아들이 존경하는 아빠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입니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존재 확인이기도 합니다.
    세상 모든 아버지들이 그렇듯, 나 역시 아이에게 잘해준 기억보단 그렇지 못한 것이 마음에 가시로 남아 있습니다. ‘아!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회한의 가시는, 문득문득 가슴을 찔러 오고 술자리에선 소주잔에 눈물 한 방울 보태곤 했습니다.

    커가는 아이를 보며 전 그때마다 아이에게 저를, 제게 제 아버지를 대입해 바라보곤 했습니다. ‘아. 그때 난 이랬는데 이 아이는 그렇구나’ 혹은 ‘아버지가 이랬는데 난 그때 그랬구나’하는 식입니다.
    오늘 아이의 말을 들으며 문득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라고 ‘존경한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무뚝뚝하고 쌀쌀맞은 저는 늘 아버지에게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아이였습니다. 장성해서도 술 한 잔 나눈 적 없이, 되레 만남을 최소화하려고 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이 역시 제 가슴에 가시로 남아 있습니다.

    뉴데일리가 8.15를 맞아 건국대통령 이승만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열흘 정도 취재를 하고 이승만 연구 학자들을 만나며 우리 국민 모두가 저 같은 불효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이며 건국 후의 애국운동은 식민지 혹은 신생국 국민을 자식으로 여기는 끝 모를 ‘내리사랑’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것의 팔 할은 이승만 박사의 피와 땀이 그 바탕에 숨어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 대통령을 우리는 버렸습니다. 망명지 하와이에서도 늘 조국걱정에 잠 못 이루던 건국의 아버지에게 우리는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되레 ‘독재자’라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아버지의 작은 흠을 미워하고, 받기만한 큰 사랑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패륜입니다.
    또 한 번의 광복절을 맞으며 우리가 건국대통령에게 해야 할 말은 “사랑합니다”와 “존경합니다”입니다. 그것이 최소한의 사람다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