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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일상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미디어법 통과 후의 정치적 파장이 심각하다. 야당은 입법부가 결정한 내용을 제 손으로 헌법재판소로 가져가 적법성을 심사해달라고 요청, 스스로의 권위를 실추시켰다. 입법의 문제는 국회의 테두리 내에서 정당 정치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국회의원을 포함해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헌재에 판단을 요구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야당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디어법을 들고 거리로 나서서 전국을 돌며 '지역 언론이 고사할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일삼고 있다. 구호 내용을 보면, 10월 보궐선거를 겨냥해 미디어법을 선전전(宣傳戰)의 전략적 도구로 사용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야당의 구호 내용은 사실과도 다를 뿐더러, 정치적 선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는 선거를 앞두고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겠다는 정략에 따른 것이다.
야당이 목청을 높이는 것과는 달리, 미디어법 개정은 신문법·방송법·IPTV(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법 등을 시대 상황과 기술발전의 수준에 맞춘 것이다. 이를 통해 미디어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국민들의 '정보 복지'의 수준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 시장에도 대자본이 필요한 이유는 신문과 방송을 막론하고 점점 악화되고 있는 기존 미디어들의 수익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미디어 산업의 융합 과정에서 신문과 방송 간 힘의 균형을 도모할 수 있고, 매체 간의 긴장을 완화해 미디어 산업의 하부 구조를 튼튼하게 구축할 수 있다.
앞으로는 매체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매체 간의 수직적·수평적·국제적 결합이 손쉬워지며 여러 미디어가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콘텐츠도 많아질 것이다. 미디어 기업에 창조적인 두뇌가 모여들고 건전한 오락문화를 건설하는 모험적인 창작산업이 번창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도 재무구조가 튼튼한 미디어 자본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디어법과 정책은 미디어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다국적 멀티미디어와의 경쟁에서 국가와 민족의 지위를 유지·발전시키는 일을 잘 맡아 주도록 터를 닦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의 미디어법 개정은 정치적 흥정 끝에 이러한 가능성을 막아놓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애초에 30%까지 허용하기로 했던 지상파 방송에 대한 대기업과 신문의 지분 투자 상한선은 10%로 낮춰졌다. 그마저도 2012년까지는 경영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다. 종합편성이나 보도전문 채널에 대한 지분투자 한도도 49%에서 30%로 낮춰졌다.
이래 가지고선 어느 대자본이 움직이겠는가. 스스로 미디어 산업을 육성시키기 위해 나서는 이를 쉽게 찾기 힘들 것이다. 나중에는 자본을 찾지 못해 모든 미디어들이 나서서 정부만 바라보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바로 지난 노무현 정부 때 세금으로 일부 마이너 신문들을 지원하자는 발상이 나오는 것을 우리는 보지 않았는가. 그렇게 되면 미디어는 국민이 아니라 정권에 종속되는 미디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미디어법은 80년대 5공화국 정권 이래 30년 가까이 집권 세력이 장악해온 지상파 방송을 국민에게 되돌려준다는 역사적 의미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입법 의도는 MBC가 중심이 된 지상파 방송사 노조와 이를 지원하는 제1야당의 협조 아래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어렵게 됐다. 그리고 야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 여당 스스로 법을 뜯어고쳐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도 법 통과 이후 야당은 거리로 나섰고, 방송사 노조들 역시 이에 동조하며 한여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애초에 정략적 차원에서 접근한 야당과 일부 언론사 노조를 상대로 이런 협상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순진한 발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