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8월 5일 오후 민주노총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으로 진입하려 하자 경찰차가 그들을 못 들어가게 하려고 차로 방패를 쌓았다. 그러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피신하는 경찰관을 집단 폭행했다. 경찰관은 상가주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났으나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하며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이 장면을 조선 닷컴이 생생한 동영상으로 잡아 보도했다. 

    방송들이라면 이 장면을 어떻게 보도 했을까? 그래도 '경찰의 과잉 진압'이라고 했을까? 아마도 그러지는 못하고 그냥 못 본체 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 정도는 경찰의 '과잉 진압'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했을까? 

    도대체 직무집행중의 경찰관에게 폭행을 가한다는 사실 자체가 선진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동남아 일대에서도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 그곳 경찰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더 물을 필요조차 없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실제로도 경찰관에 대해 폭력 도발을 하는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그 땐 그보다 몇 갑절 더 압도적인 국가 응징력을 발동해 도발자들을 아예 콩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콩가루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묵사발이라 해야 할 것이다.

    법치국가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정당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수립된 정부만이 法이 정한 준거에 따라 강제력(폭력)을 배타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나라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 상황은 법치국가가 아니다. 방송들이 국가의 그런 정당한 법집행과, 폭력 난동자들의 경찰관 구타, 화염병 투척, 새총 발사 등을 1 對 1로 대등하게 취급하기 때문이다. 문명국 어디서 이렇게 공권력과 난동자들을 똑같이 간주해서 "양측의 충돌이 예상 된다"느니, "경찰의 과잉 진압" 어떻고 하는 소리들을 하는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 저항의 양상은 완전히 '전투' 그것이다. 이게 바로 內亂的 멘탈리티(mentality), 내란적 世態 아니고 무엇인가? 명색이 공영방송이라는 것들이 그것을 공권력의 대칭점에 놓고서 "兩側' '경찰의 과잉' 운운 하는 것부터가 폭력 난동자들을 정부와 맞먹는 무슨 '교전단체'라도 되는 것처럼 정당화 시켜 주고 格上 시켜 주는 脫국가적 망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범법자와 공권력을 어떻게 무차별적으로 대등하게 자리매김 하고, '공권력=무조건 탄압자' '범법자=무조건 약자'로 그리는가?

    이런 양상만 기준으로 해서 본다면 대한민국은 건국 61년 만에 다시 통합된 근대 국민국가 이전의 수준으로 전락한 셈이다. 중국의 역대 통일제국 말기에 나타나던 "사방에 도적이 창궐하고 稱帝(제왕을 잠칭함)-建元(연호를 새로 세움)을 불사하는 '나라 안의 나라'가 생겼다"는 古事를 연상 시키는 상황이다. 이래가지고도 우리가 정말 선진국 운운할 자격이 있을까? 이런 선진국은 동서고금에 있어 본 적이 없다. 중앙정부의 압도적인 권위와 권능을 확보하지 못한 나라가 무슨 선진국은 고사하고 '나라'라고인들 뽐낼 수 있는가?

    이명박 정부는 '중도' 정부라서 그랬는지, 폭력난동에 맞섰던 김석기 경찰청장을 물러나게 했다. 次期를 노리는 박근혜 씨는 그야말로 次期를 바라서 그랬는지, 용산사태 때 "왜 공권력이 그렇게 일찍 현장에 진입했느냐?"고 비난했다. 그런 자세들은 대단히 '정치적'이었는지는 모른다. 또, 그렇게 처신해서 '대단히 정치적인' 소득을 얻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 그런 처신은 近-現代 선진 국민국가의 국가원수와 국가원수 지망자가 할 바 처신은 아니다. 

    한국은 역시 너무 너무 작고 역부족이라서, 그 대통령과 그 대통령 지망자도 평양에 간 클린턴이 적대방 앞에서는 '죽어도 웃지 않았던 것'처럼 당당하고 의연하게 처신할 능력과 도리는 없는 모양이다. 한없이 초췌해지고 작아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