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을 향해 인상을 쓰는 학생들을 본다. 심지어 선생님을 구타하는 학생들도 있다. 문제 학생이야 시대를 초월하여 어느 시대나 있었겠지만, 선생님에 대한 공경심이 이렇게 무너진 시대는 없었다. 하긴 선생님이 헌신과 봉사라는 위대한 가치를 버리고 노동자로 주저앉아 돈타령이나 해대는 세상이니,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항변하겠는가마는, 세상은 너무나 쉽게 예절교육을 포기하고 말았다.

    교단에 발령받은 곱게 생긴 젊은 여선생님이 울고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학생들 때문이다. 속상한 그만큼 대학교에서 텍스트를 통해 익힌 스승으로서의 사랑과 의무감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 많다. 수업 시간 잠자다가 깨우는 선생님을 향해 욕을 해대는 학생들. 숙제 안했다고 혼내면 주먹을 쥐고 달려드는 학생들이 지금 우리 교육 현장에 있다.

    이러한 문제에 용기 있게 나선다면, 그 학생 뒤에는 학부모가 있다는 점을 또한 명심해야 한다. 학부모에게 머리채 잡힐 일을 각오해야 하니, 문제학생을 보고도 그저 남의 자식 그냥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다 사회 또한 비행청소년에 대한 계도(啓導)를 게을리 한다. 나서면 손해 본다는, 이 점을 깨달은 선생님들은 학생들 곁에서 점점 남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교대나 사대를 졸업하고 교단에 발령을 받은 지 불과 몇 달이면 깨닫는 현실이다. 이 와중에 눈치 빠른 선생님들은 그저 승진이나 꿈꾸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여기다 일부 교원단체의 노동운동도 이에 가세한다. 교단의 현실에 대한 문제보다 반미운동에 더 열심인 노동교사들. 그래서 올바른 뜻을 지닌 선생님들은 휩쓸려 함께 노동자가 되고, 문제 교단의 방관자가 된다.

    선생님을 욕하고 때리고 학교 밖으로 뛰어나가는 학생들이 있는데. 학교는 노동교사들의 노동운동과 반미운동으로 시끄럽다? 그러므로 이 나라 교육은 이미 무너지고 없다고 보아야 한다. 교사가 교육에서 일탈하여 정치문제에 몰입하는 학교, 그리고 바른 치료를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는 한, 우리 교육은 희망이 없다.

    이렇게 학생을 향해 예절을 가르치고 사람됨을 가르치는 일에 소홀한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그리하여 예절을 모르고 어른에 대한 공경을 모르는, 더 나아가 대한민국 조국(祖國)조차 부정하는 아이들이 사회로 나아가 오늘의 혼란을 양산(量産)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대학입시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국민들도 스스로 해법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라나는 어린 청소년들의 반윤리적인 태도나 행동을 보며 한탄만 하고 있다. 선생님의 신변의 안전과 권위(權威)를 지켜주는 일에 소홀하면서 그 책임만을 묻고 있다.

    어린 신규교사가 처음부터 방관자가 되었겠는가. 나서면 손해 보는 현실이 그러하니 그렇게 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인간을 만들고, 질서를 가르치는 일이 교육임에도 세상은 오직 사교육과 과외, 대학입시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비인간적인 아이들이 생겨나고, 사회질서를 무너뜨려도 좋다는 학생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국가가 시행하는 진단평가를 거부하는 일부터 미군철수 집회 현장에 동원된 학생들을 보면서, 대통령과 국민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가? 가슴이 무너진다.

    교사가 소신을 가지고 열심히 할 수 없는 일이 다만 이 뿐만이 아니다. 교단 곳곳에 비교육적인, 그리하여 선생님들을 바른 사도(師道)의 길로 이끌지 못하게 하는 암초들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선생님을 지키고자 한다면, 대통령과 우리 국민들이 이 암초들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해야 하며, 이에 대한 제도적인 개선이 있어야 한다.

    우리 자유교조는 선생님을 선생님답게 만들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 반드시 이 문제들을 해결하여, 훌륭한 선생님을 법으로 보호하고 제도로 감싸 안아 위대한 스승을 기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