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한 잘 알려진 左쪽 논객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지금의 한국은 파시즘 초기 단계다" 한 잘 알려진 전직 대통령이 "지금은 민주주의의 위기다"라고 말한 것의 후렴인 셈이다.

    파시즘은 무솔리니, 히틀러, 프랑코가 대표하던 정치사상, 정치운동, 국가체제, 경제체제다. 그러나 학자들간에도 파시즘에 대한 定義가 좀처럼 일치하지 않을 정도로 파시즘은 일관된 논리를 갖춘 '이론'은 아니다. 이론이라기보다는 이것 저것 갖다붙인 선동의 광상곡이라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파시즘은 대체로 '극우'로 규정된다. 그런데 파시즘의 당사자들은 스스로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이라고 자처했다. 아닌 게 아니라 파시즘의 경제는 조합주의(corporatism)를 지향했다. 극단적인 자유방임주의 대신, 일종의 국가통제 자본주의인 셈이었다.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양극단에 갖다 놓고 자기들은 그 '중간'을 1당 독재로 밀고나간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만 말한다면 파시즘은 '중도의 경제체제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웃지 못할 모순당착의 코미디가 될 판이다. 

    그 만큼 파시즘이란 말은 제멋대로 써먹히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남을 나쁘게 말할 때일 수록 더 그렇다. 오죽했으면 조지 오웰 같은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파시즘이란 말은 무의미 그 자체다. 파시즘이란 말은 농민에게도, 구멍가게 주인에게도, 여우 사냥에도, 鬪牛에도, 키플링에게도, 간디에게도, 장개석에게도, 동성애자에게도, 유스 호스텔에도, 점성술에도, 개(犬)한테도,,,다 써먹으려면 써먹을 수 있을 정도다." 한 마디로 파시즘이란 말은 자신들한테나 다른 사람들한테나 제멋대로 갖다 붙이는 '엉터리性' 상투어라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가 미우니까 '파시즘 초기 단계'라고 갖다 붙이면 그만이란 식이다. 

    그 만큼 파시즘이란 말은 모호한, 그래서 남을 욕하는 데는 아주 그만인, 편리한 말로 써먹히기도 한다. 해방직후나 지금이나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즐겨 쓰는 욕은 그래서 '파쇼'라는 말이다. 남한과 그 리더들은 모두 "식민지 파쇼다" 하는 식이다. 자기들에 반대하면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싫어한 우파도 모조리 '파쇼'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명박 대통령이 드디어 '파쇼 초기'라는 소리까지 듣게 됐다니, 이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과소평일까, 과대평가일까? 아무래도 과대평가라 해야 맞겠지? 살다 보니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히틀러, 무솔리니하고 동격이 됐으니 말이다. 

    左쪽의  知的 밑천이 이젠 다 돼가는 모양이다. 겨우 꺼내든다는 말이 고작 케케묵은 '민주냐, 反민주냐' '파쇼냐, 反파쇼냐'인 것을 보면 저쪽의 현주소는 이미 오래전 지도상에서 사라진 아틀란티스 대륙에 꽂혀 있는 모양이다. 아, 찬란한 '굿 올드 데이스(good old days)'여, '反독재, 反파쇼'만 외쳐대면 일약 '민주투사'로 각광받던 옛날이여 오라, 다시 한 번!!" 그들의 안간힘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누가 알랴? '천성관 낙마'처럼, 이명박 정부가 워낙 웃기는 짓을 자꾸 하면 20012년에 그들의 꿈이 다시 한 번 이루어지지 않으리란 법도 없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