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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국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장
요즘 불고 있는 자전거 바람에서 “묵은 것이 새롭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옛말이 참말임을 알겠다. 자동차의 전래보다 훨씬 앞서 1882년경 이 땅에 선보인 제 1호 외래 교통수단이 자전거였다. 미국 해군대위의 궁중 자전거 시범을 보고 “지탱하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탈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고종황제가 놀라워했다.
이전 것이 당대에 새로 각광을 받음은 다 까닭이 있다. 옛 부녀들이 자투리 베 조각을 꿰매서 밥상보로 쓰던 기능성 보자기가 오늘날 색채감을 뽐내는 예술품으로 격상했듯, 자전거는 길을 빨리 재촉 할 수 있던 것을 넘어 바야흐로 온실가스로 가득 찬 지구환경을 살릴 수 있는 이기로 각광받고 있다.
그 뿐인가. 자전거교통은 현대 도시-산업사회에서 일상화된 도시혼잡을 이길 수 있는 대안으로도 부상했다.
산업화 성공 덕분에 가구마다 자가용을 보유하게 된 한편으로, 서울의 비대에서 볼 수 있듯, 공간적으로 인구과밀의 세계도시가 등장했다. 이 탓에 만연해진 교통 혼잡이 현대사회의 대표적 공해로 손꼽힌다.
환경경제학이 말하는 공해는 두 가지. 공장주는 가해자, 오폐수에 시달리는 주변 주민은 피해자로 고정된 ‘일방(一方)적 공해’, 그리고 도심 네거리에서 오가지 못하고 꽉 막혀 자가용 운전자마다 “사람들, 징그럽게 많이들 길거리로 나왔네.”하고 투정부림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뒤엉킨 자동차 무리들이 모두가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경우의 ‘쌍방(雙方)적 공해’가 있다.
사람들 눈에 띄는 수질․토양․대기오염이 공해인 줄 알면서도 자동차가 빚는 혼잡의 사회비용은 곧잘 간과한다. 막혔다 하면 몇 시간씩 꼼짝 못 하는 동남아의 쟈카르타, 방콕만큼 심각하지 않은 탓일까. 외지에 따르면 방콕 교통경찰의 필수소지품이 아기 탯줄 자르는 가위다. 한 달에 두 건이나 아기를 차 안에서 받아낸 순경도 있다 한다.
우리의 혼잡 사회비용도 만만치 않다. 전국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7%가 자동차 발(發)인데 그 혼잡비용은 GDP 대비 2.9%를 차지할 정도로 막대하다.
혼잡을 줄인답시고 도시계획은 그 사이 길을 넓히고 또 넓혀왔다. 하지만 이 방도로는 날로 더해가는 교통 혼잡을 피할 길이 아님을 전 세계가 깨닫는다. 때문인가 일본은 이미 ‘탈자동차사회’ 조짐을 보인다. 동경에 사는 20대를 설문 조사한 결과, “수중의 돈을 어디에 쓰고 싶은가”란 물음에 자동차는 16위에 그칠 뿐이었다. 실제로 20대의 자가용 보유율은 1993년의 64.4%에서 2005년엔 54.1%로 감소했다.
우리 역사에서 전화, 승용차 같은 근대문물이 도래할 때 최초 채택자는 최고통치자였다. 생태근대화가 문명사적 필연이라 간파하고 녹색성장을 국정과제로 정한 이명박 정부에서 자전거 타는 모습을 대통령이 보여줌도 마찬가지. 교통 혼잡이 일상인 대도시 도심에서 자전거는 경쟁력이 있음을 말하려 함이다.
체증이 상시적인 세계도시 도심에서 이동거리 반경 5킬로미터 안은 자전거 기동성이 자동차에 버금간다. 실선(實線)적 이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자동차가 도심에서 혼잡의 수렁에 빠진 사이, 점선(点線)적 이동이 가능한 자전거는 그 혼잡에서 자유롭다. “언제 어디서든지”란 뜻의 ‘유비쿼터스(ubiquitous)’ 영어를 중국 사람은 ‘隨時隨地(수시수지)’라 옮겼는데, 바로 자전거야 말로 “수시수지 교통수단”인 것이다.
녹색바람을 타고 전국 일주용 자전거 길도 열릴 것이다. 하지만 녹색성장정책은 무엇보다 자전거를 도시교통 수단으로 키우려한다. 마침내 도시교통 분담률이 지금의 1.1%에서 10년 뒤 2020년에 10%에 달할 수 있다면 특히 서울 도심의 상습정체는 한결 뚫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