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보수논객 러시 림바우

    러시 림바우는 미국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보수 논객입니다. 라디오 토크 쇼 진행자인 림바우는 출중한 언변과 명쾌한 논리와 확고한 자기 소신으로 미국에서 가장 청취자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방송인입니다. 고정 청취자가 1천4백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는 림바우를 공화당의 새로운 리더로 치켜세우고 있는 가운데 공화당은 림바우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러시 림바우에 공개적으로 맞서는 공화당 정치인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공화당 지도자들은 러시 림바우 영향력과 발언이 커질수록 공화당의 장래는 암울하다는데 동의합니다. 러시 림바우는 열성적인 팬들을 확보하고 있으나 그 논지가 너무 극단적이라 주류 정치에서 포용할 수가 없고, 다수 국민의 지지를 끌어 낼 수가 없습니다. 림바우에 중독된 열성 신자들이 림바우를 최고의 토크 쇼 호스트로 만들고 있지만, 바로 이들의 열광이 림바우를 극단적인 보수주의 포로로 만들고 공화당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극단주의 열광세력들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극단적인 열광 세력이 있습니다. 이들 열광 세력은 종교적으로, 사상적으로 시대를 왜곡하고 사람을 오도하면서 파괴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들 극단주의 열광세력이 역사를 불행하게 해 왔고 지금도 불행케 하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한국 사회가 극렬한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은 "중도 강화론"을 화두로 던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한다" 면서, "우리 사회가 좌 우 이념적 구분을 지나치게 한다. 사회 통합은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러한 진단은 원칙적으로 바른 인식이지만, 현실적으로 현명한 처방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의 시급한 과제는  좌우를 아우르는 중도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방향이 잘못 간 것을 교정시키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한국의 정치 풍토를 전투적으로 만들었고, 국체의 방향을 천박한 좌파주의로 끌고 갔습니다. 이데올로기로 대치된 한반도는 한쪽이 상대편 사상으로 편향되면 결국 그 체제 쪽으로 가자는 것을 뜻합니다. 북한이 남한 체제에 기우는 반동적 자본주의 세력을 무자비하게 축출하는 현실에서 남한은 북한 체제에 동조하는 좌파들이 사회 곳곳에서 갈대숲처럼 자라고 있습니다. 이것을 교정해야 하는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이들 극단적인 좌파 세력에게 휘둘리다가 결국 그들과 손을 잡는 중도론을 제창했습니다. 얼른 들으면 이명박 정부가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포용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만 결국은 좌파 극단주의에 투항하는 것입니다.

    진보라는 한국적 착각

    이명박 정부나 보수 진영은 합리적 진보 세력과 극단적인 좌파 세력을 구분해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진보와 아름다운 옛것을 지키는 보수가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 갈 때, 나라는 선진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우병 떼거리 시위나 용산참사의 무모한 저항과 노무현 자살의 광적 추모는 진보주의 참 모습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이들 극단 세력은 독재 타도라는 어처구니없는 잠꼬대를 진실처럼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을 교정시켜야 할 이명박 대통령은 여기에 이끌려 가는 무력한 대통령이 되고 있습니다. 광우병 촛불 시위대 함성에서 아침 이슬 노래 소리를 들었다는 이명박 대통령은 용산 참사의 폭력 저항을 진압했던 경찰청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노무현 자살을 국민장으로 만들어 좌파의 눈치를 살피다가 결국은 중도론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이철승 '중도 통합론'의 교훈

    유신 독재시절 이철승 야당 지도자가 "중도 통합론"을 외쳤을 때 이철승씨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민주주의를 목말라 했던 시대의 민심을 읽지 못했습니다. 군사독재 시대 중도 통합론이 독재 권력에 투항을 뜻했던 것처럼 극단적인 좌파가 날 뛰는 오늘 중도론은 좌파 광기 세력에게 항복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남한의 좌파 세력은 진정한 좌파도 못되는 "북한식 좌파" 세력입니다. 북한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깃발을 내 걸었지만, 이데올로기 깃발을 도용한 왕조적 수령주의입니다. 이조시대 군주제에서 일제 식민지 천황주의제를 거친 북한 인민들은 곧바로 집단적 수령주의로 들어갔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아들 김정운이 대를 이으면 수령 왕조가 3대로 세습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 근대적인 수령 왕조에 한국의 좌파 세력이 심취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진보세력은 바로 이점에 눈을 떠야 합니다. 진보 진영이 북한식 좌파세력과 손을 잡으면 진보주의는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보수 세력을 "수구 꼴통"이라고 비하하고 있는 진보 세력이 북한식 좌파와 손을 잡으면 그들 스스로가 "수구 진보" "꼴통 진보"가 되는 것입니다. 보수가 시대의 진전을 읽지 못한다고 경멸하는 진보가, 시대를 못 따라가는 실패한 좌파 이데올로기에, 그것도 국민을 수백만 굶겨 죽인 북한식 좌파 이데올로기에 연연하는 것은 자가 당착이고 스스로가 "수구 진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실험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죽은 좌파주의를 첨단 경쟁시대를 이끌어 가는 미래의 깃발로 삼겠다는 망상에 세뇌되었습니다.

    보수-진보 구분은 시대착오

    이명박 대통령이 합리적 진보 세력과 공조하고 필요한 진보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굳이 "중도 강화론"이라는 어색한 깃발을 올릴 필요가 없습니다. 타이밍이 적절치 못합니다. 나라의 장래와 국민 복지를 위해서는 진보정책과 보수정책 어느 것이든 택할 수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중도 강화론이라는 정치적 수사를 사용하기 보다는 그 시대와 상황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진보 보수에 구애되지 말고 과감하게 수용하면 됩니다. 미국 보수 진영이 자랑하는 레이건 전 대통령은 철저한 보수를 지향하면서도 경제 정책에서 진보 정책을 과감하게 도입했고,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진보주의자지만 보수적인 경제 정책을 많이 사용했고, 오바마는 반대자들로부터 사회주의자란 공격까지 받았지만 포용적인 자세로 보수정책도 포용하고 있습니다. 금을 긋듯이 보수 진보를 구별하는 것은 질주하는 새 시대를 수용할 수 없는 낡은 이데올로기 발상입니다. 오늘의 복잡한 지구촌 세상은 보수 진보의 잣대만으로 움직여지질 않습니다.

    중도론이냐 지도력이냐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 불황을 만들어 낸 미국 경제도 더 이상 보수 진보 논리로 고칠 수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보수 진영의 자유방임 정책으로 경제가 호황을 누렸으나, 지나친 자유방임은 인간의 탐욕을 무절제로 불러 왔고, 탐욕의 늪에 빠져든 월가는 미국 경제를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결국 보수도 진보의 간섭주의를 찬성하게 되었고 정부가 금융 기관의 대주주가 되는 간섭주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 병이 치유되면 다시 무간섭 주의로 갈 것입니다. 보수 정책을 택할 것인지, 진보 정책을 수용할 것인지는 국민의 심성과 시대 상황에 달렸습니다. 국민의 수준과 품격에 따라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 정책이 바람직할 수 있고, 빈부 격차와 사회 모순의 정도에 따라 큰 정부를 주장하는 진보 정책이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이 이기적이고 무절제하게 될수록 보이지 않는 손으로 움직이는 자율성 보다는 규제와 간섭이 증가되고 자유가 제한당합니다. 지도자는 시대의식과 시대상황을 정확히 읽고 통찰해야 진보와 보수 정책을 과감하고 시의 적절하게 실행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여기 저기 눈치를 살피고 우유부단하면 시대를 잃어버리고 국가를 방황케 합니다. 특별히 남북이 대치된 한반도 상황에서 지도자에게 확고한 철학이 결여되면 나라는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중도에 중도 강화론을 주창한 것은 철학의 빈곤, 지도력의 부족이기도 합니다. 보수의 깃발을 들고 달리다가 진보의 저항이 커진다고 깃발을 바꾸는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자신감과 신뢰를 실추 시키는 것입니다. 보수의 철학도 없이 보수주의를 외치면서 대통령이 되었다면 대통령 준비가 덜 되었거나 자질이 부족한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절실한 것은 중도론이 아니라 지도력입니다.

    친북좌파 척결이 독재라면 독재해야

    중도 강화론이 억지떼를 쓰면서 길길이 떼를 짓는 수구 좌파 세력과 대화하고 이들을 포용하려는 것이라면 이명박은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고, 남한의 장래가 위태로워집니다. 좌파 세력이 수구적일 수록 교조적이고 광적입니다. 이들은 결국 남한을 교란시키려는 북한의 교두보 세력이 될 것입니다. 이들 낡은 좌파들은 설득이나 중도적 포용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 병에 걸렸습니다. 이들 북한식 좌파주의자들을 척결하고 잠재우는 것이 독재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독재를 해야 합니다. 미국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국가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극단 세력은 설 땅이 없습니다. 미국의 러시 림바우 같은 극우 세력도 한국의 좌파 세력에 비하면 합리적 보수입니다. 림바우는 오바마가 실패한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는 말을 했다가 그것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뺏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한국의 좌파 세력이 보면 림바우는 온건하고 순진한 보수입니다.

    중도 하려면 극좌 추방이 먼저

    광적인 좌파 세력과 결전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는 강력한 법치주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개방된 보수 세력과 합리적 진보 세력이 손을 잡고 극단주의를 추방하고 선진 의식의 초석을 깔아야 합니다. 폭력적인 극좌 세력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한국은 선진국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파괴적이고 광적인 극좌 세력을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허용하는 것은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걸음을 한 발짝도 못 내딛는 극단적인 "수구 보수" 세력과, 역사의 변화를 한 치도 못 내다보는 극단적인 "수구 진보" 세력을 주류 정치에서 추방하는 것이 한국이 세계적 국가로 가는 길입니다. 중도주의는 배타적인 극단주의를 제거하는데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