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 뉴데일리
    ▲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 뉴데일리

    우리의 교육열은 세계적이다. 정부 공식 발표를 보면 연간 사교육비가 21조원에 달하고 일부 사설경제연구소들은 30조가 넘는다는 추정치도 내놓고 있다. 공교육 예산과 거의 맞먹는 액수다. 또 가족 해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기러기 아빠' 현상도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희생과 노력을 들여 대학에 들어오는,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과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사실 공대 신입생들이 고등학교에서 미적분학도 안 배우고 입학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일 학생들이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면, 교수가 가르쳐서 학업을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대학이 할 일이다. 이런 미흡함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혼자서 공부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점과 남과 다르게 창의적으로 생각해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대학 지원생들이 작성한 자기 소개서나 논술 답안지를 읽어보면, 내용이 다른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의대 지원생들이 평생에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거의 다 '닥터 노만 베쑨'이며, 환경학과 지원생들에게는 '침묵의 봄'이 그 역할을 한다. 진학 동기는 더 천편일률적이다. 의대 진학 동기는 가까운 친척이 불치의 병에 걸린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생겨서이며, 수학과 지원 동기는 어려운 문제를 풀면서 '희열'을 느껴서이다. 이렇게 똑같은 답이 나오는 것은 입시 학원에서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학생들을 통해 듣게 되었다.

    이렇게 학교에서 또 학원에서 붕어빵틀 속의 밀가루 반죽처럼 10년 이상 눌려 있던 학생들이 대학 4년 동안 창의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일은 자기 자식을 붕어빵으로 만들기 위해 부모들은 엄청난 희생을 하고 있고, 이런 엉터리 교육을 시키는 사설 입시학원들은 재벌 소리를 들을 정도로 호황이라는 점이다.

    대학입시의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대학들이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교육과학부도 많은 예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제도가 제대로 도입되고 실행되려면 학부모와 학생들의 공부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입시전략을 세워 줄 엉터리 학원을 찾아가는 대신에 아이들이 창의성을 갖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창의성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너무 평범하게 들릴지 모르나 나의 첫 번째 제언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많은 양의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창의성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생각이 아니다. 인류가 쌓아온 지식을 충분히 이해한 후 거기서 작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이다. 아이를 학원에 내맡기기보다는 거실의 TV를 꺼버리고 함께 책을 읽고, 아침과 저녁 밥상머리에서 여러 주제에 대해 부모와 아이가 대화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사교육'의 시작이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학생들이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많은 양의 지식을 외우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것들 사이의 관계를 찾아내는 것이 강조되는 사회다.

    과학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첨예한 갈등의 문제도 이런 상호작용의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에 빚어졌을 것이다. 남에게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펴는 방법, 틀에 박힌 정답을 찾기보다는 모든 현상에 대해 질문과 의문을 갖는 태도, 자기의 생각을 정확히 글로 표현하는 것, 다양한 학문과 의견에 접촉하는 것 등이 상호작용의 예이다.

    경제는 어렵고 정치는 답보이며 나라 안팎으로 어려움이 산재한 이 시점이 중요한 적기다. 바로 다음 세대의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붕어빵 제조법에 노심초사할 것인가, 아니면 창의성을 갖고 혼자 공부하는 법을 깨치고 익힌 세대를 길러낼 것인가.
    <6월23일자 조선일보 아침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