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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무익 한국갤럽조사연구소장 ⓒ 조선일보 사진DB
"사그라지는 '조문정국' 국민들 '애도의 정치화'에 반감" 기사는 "조문정국의 열기가 예상보다 빨리 식고 있는 분위기"라고 보도했으나, 조문정국의 성격이나 그 열기가 식었다는 데 대한 과학적 근거는 미약했다.
무엇보다 조문정국 전후로 여야 정당의 지지율이 역전됐다는 '믿음'이 과연 사실이기나 한가. 조문정국 전후 여야의 지지율 순위가 뒤바뀌었다는 뉴스를 접한 국민은 혼란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여론이란 것이 본래 이렇게 쉽게 변하는 것인가, 아니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실제로 여론을 움직인 것인가?
갤럽조사 결과로 풀어보면, 정당 지지율 변화는 실제 지지율에 변화가 있었다기보다는 응답 태도의 변화, 즉 지지 정당을 밝히지 않는 무응답의 크기와 방향이 달라진 데 있었다.
조문정국을 전후로 한나라당은 34.2%(3월 24일)→28.4%(5월 25일)로 5.8%포인트 하락, 민주당은 6.4%포인트 상승(20.1%→26.5%)했다. 그러나 결과 구조를 자세히 보면 이 수치가 곧 지지율의 변화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한나라당은 전통적 지지 기반인 영남, 특히 부산·경남 지역에서 가장 큰 하락폭(40.2%→28.7%)을 보였지만, 이 지역의 민주당 지지율은 13.5%→13.8%로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반면, 광주·전라 지역에선 민주당의 상승(48.1%→70.8%)이 두드러졌고, 무당층(無黨層)은 27.8%→13.3%로 감소했다.
요컨대 여당 지지층이 민주당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무당층으로 남았고, 지지를 표현하지 않던 야당 지지자들이 조문정국을 거치며 지지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힌 결과로 해석된다. 여당 지지자들은 주위 분위기가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인식될 때 침묵하는 경향을 보이는 '침묵의 나선(螺線)'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여론조사의 실제 의미가 이럴진대, 겉으로 드러난 지지율을 두고 '조문 민심'의 지지를 굳히겠다며 거리로 나선 야당이나, 책임 소재 운운하며 집안 싸움을 벌인 여당의 모습은 차라리 코미디이다. 대표성이나 신뢰성이 의심되는 여론 조사 결과를 마구 발표하는 조사기관이나 이를 검증 없이 즉각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관행은 이런 '정치 코미디'를 더욱 부채질하는지도 모른다.
현재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묻는 질문에 국민의 7할 이상이 경제 회복, 실업 해결 등 민생 안정을 꼽고 있다. 그런데도 여야는 진짜 정당 지지율을 올리는 일은 외면하고 있다. 민의(民意)를 좇아 힘쓰면 정당 지지율은 저절로 올라갈 터인데, 이 간단한 이치를 아는 정치인이 이토록 없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