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 뉴데일리
    ▲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 뉴데일리

    미국인에게 북한은 멀리 있는 나라였다.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소란을 일으키고, 괴상한 독재자가 통치하는 땅이라는 인식 정도가 북한에 대한 생각의 전부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 국민은 북한의 존재를 피부 가까이 느끼게 됐다. 38선 이남의 한국인들이 오래전부터 이해하고 있는 북한 정권의 속성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북한이 미국 기자 유나 리와 로라 링에 대해 각각 12년 노동교화형을 언도한 것은 미국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미국인이 북한에서 이 정도로 가혹한 일을 겪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에 심드렁하던 미국인들은 갑자기 북한 특별교도소의 실제 대우가 어떤지, 두 기자가 앞으로 어떤 상황에 처할지에 대해 깊은 우려와 관심을 보였다.

    미국인들은 북한이 왜 두 기자에게 이처럼 중형(重刑)을 선고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일부에서는 북한에서도 항소가 가능한지를 묻고(북한 재판은 통상 2심으로 진행되지만, 이번처럼 최고 법원인 중앙재판소가 1심을 선고하면 형이 그대로 확정된다), 적법한 변호를 받았는지를 궁금해한다. 북한의 2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문제를 두고 미국과 북한이 벌이는 정치외교적 게임에 두 사람이 희생양이 된 것이 아니냐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북한이 내리는 모든 결정에는 나름대로의 논리가 숨어 있다. 최근 잇단 도발의 중심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서 삼남 김정운으로 넘어가는 권력 승계 문제가 있다. 권력 이양은 최상의 상황에서 천천히 진행된다고 해도 상당히 불확실하고 잠재적으로 위험 요인이 높은 과정이다. 더구나 김정일의 건강 문제 때문에 급박하게 진행되는 이번 경우에 그 위험성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독재 정부가 약해지고 겁을 먹게 되면 국내외적 안정성을 확보할 기반을 찾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북한의 지난 두 달간 도발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려는 노력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들이 핵무기를 과시하기 위한 실험은 외부 세계에 '우리를 흔들 수 없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는 북한이 도모하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안정성 확보에 그치지 않는다. 김정운이 안정적으로 정권을 넘겨받으려면 내부 단속도 필요하다. 당연히 불거질 권력 다툼 외에도 주민들의 동요가 정권 안정에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위협이란 거창한 '혁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스키외가 지적했듯, 북한처럼 오래되고 힘 빠진 사회의 국민은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하기에도 힘이 부친다. 혁명이라는 고상한 이상을 추구할 여력이 없다.

    북한 주민들이 정권에 던지는 위협은 탈북자 문제를 들 수 있다. 탈북자는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타고 있다. 한국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1995~2001년 사이 탈북자는 1000여명이다. 그러나 2002~2006년에는 매년 1400~1500명으로 껑충 뛰었다. 2007년 탈북자는 2750명 정도다. 중국 정부는 2006년부터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국경을 따라 보안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탈북자를 색출하면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기도 한다. 특히 중국 동북지방 길림성(吉林省) 내 조선족 자치구의 탈북자들은 대대적인 송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유나 리와 로라 링 두 기자는 이처럼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어려운 일을 겪게 됐다. 북한이 선고한 높은 형량은 체제 전환을 도모하는 시점에서 탈북자들에게 던지는 강경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두 기자의 뉴스를 전하는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중국과 북한 국경에 접근하지 말고, 탈북을 부추기지 말라'고 방송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상당히 효과가 있는 방법이다. 이제 어떤 기자가 북한 국경에 얼씬할 엄두를 내겠는가.
    <6월16일자 조선일보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