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창기 조선일보 논설위원 ⓒ 뉴데일리
    ▲ 김창기 조선일보 논설위원 ⓒ 뉴데일리

    민주당과 시국선언 교수들은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논거로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언론 자유가 현 정부 들어 많이 위축되고 침해되었다고 한다.

    책임 있는 공당(公黨)과 교수들이 설마, 아무 말이나 내키는 대로 하고 어떤 글이든 공표할 수 있는 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영업 방해 등으로 피해를 주는 말과 글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행위를 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에 야간 집회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고, 허가받은 경우 외에는 도로에서 집회·시위를 할 수 없으며, 폭력행위도 안 된다. 예고된 집회·시위에 그런 위험성이 현저함을 알면서도 경찰이 막지 않거나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법에 따라 조치하지 않는다면 경찰이기를 포기하는 일이다.

    민주주의를 '법에 의한 지배'라고 생각해보자.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면 곧 법치(法治)가 후퇴하고 있다는 말인데, 이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법질서를 무너뜨렸던 것이 작년의 '촛불시위' 사태였다. 그것은 폭력으로 공권력을 공격했다는 과격성만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산 쇠고기=광우병'이라는 거짓이 나라를 흔들었으니 대중민주주의의 위험성을 온 세상에 보여준 사례였고,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물러가라고 했으니 '민주'를 외치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부정하는 시위였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지지 않는 자유는 방종(放縱)이다. 그걸 자유라고 착각하는 풍조가 만연돼 있는 게 문제다. 자유를 넘어 방종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고 경종(警鐘)을 울려야 할 정치인이나 교수들이 그걸 구분하지 못하는 듯하다.

    근거 없고 무책임한 주장으로 남을 헐뜯는 글이 너무 많이 돌아다니는 것이 한국 인터넷의 현실인데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니 무슨 소리인가 싶다. 걸핏하면 폭력으로 얼룩지는 일부 정치성 집회 때문에 시민이 넌더리를 내는 판에 집회·시위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니 의아해할 수밖에 없다. 언론이 정치적 비판의 자유에 제약을 받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부정확한 사실로 남의 명예를 훼손하고 영업을 방해하며 국민을 오도하는 보도에 책임을 묻지 말자는 뜻으로 '언론 자유'를 끌어댄다면 설득력을 잃는다. '방송 3사' 과점(寡占)체제에 진입 장벽을 허물면 시청자들은 보다 다양한 견해와 목소리를 접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려는 미디어법을 '반(反)민주 악법'이라 부르니 억지가 심하다.

    야당은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며 '독재'라고 비난하지만, 도대체 대통령이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할 판에 무슨 독재냐고 반문하는 국민도 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목소리 높여 말하는 경우를 보았던 기억이 별로 없는 것은 과문(寡聞)의 탓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11일 "우리 국민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 반드시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성공시켰다"면서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을 지칭하며 그런 말을 해서 야당 인사들의 박수를 받았지만, 아마 북한 김정일 독재체제를 겨냥해 그런 말을 했다면 훨씬 많은 우리 국민의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의 후퇴가 아니라 방종으로 인한 혼란에 빠져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다. 책임을 수반하는 자유의 개념을 학교에서부터 잘 가르쳐야 하고 정치인들부터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길이 바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6월16일자 조선일보 태평로>